[손혁재 칼럼] 여당과 야당은 왜 싸우기만 할까

2008년 1월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용갑 의원(왼쪽)

인터넷 매체 뉴스 웹 사이트 VOX의 공동 설립자인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은 아직 마흔살도 안 됐지만 미국의 뉴미디어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입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클라인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Why We’re Polarized)라는 책에서 미국 정치가 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가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클라인은 미국 유권자들에게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만 주어져 있는데, 유권자들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사악한 저쪽’으로 규정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탄합니다. 정당과 언론, 소셜 미디어가 양극화를 지나치게 자극하기도 하지만 양극화에 빠져드는 유권자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몇 년에 한 번씩 … 당보다 나라를 우선하고, 권력자보다 국민을 대표하고, 파벌을 챙기기보다 공동선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진보적 저항세력은 기득권이 되고, 대중의 환멸이 시작되며, 유권자들은 반대편으로 슬슬 움직인다. 이 과정은 쳇바퀴 돌리기처럼 계속되고, 정치에 대한 분노만 계속 쌓여간다”고 클라인은 분석합니다.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클라인이 분석한 건 미국 정치환경이지만 마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클라인은 “양극화한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정치기관들과 정치인들은 더 양극화를 자극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정치인들이 양극화를 자극해서 대중들이 양극화되기도 할 겁니다. 정치인이 먼저인지 대중이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란과 닮았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시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경쟁자이지 무찌르고 쳐부숴야 할 적이 아닙니다. 시민의 선택을 받아 정권을 잡으면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선택을 받지 못하면 야당이 되어 정부여당을 비판·견제·감시를 하게 되는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여당·야당이 서로 상대를 백안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야 의원의 사적 만남도 드물어졌습니다. 

함께 국정을 다루고 의정활동을 해나가야 할 시민의 대표들입니다. 그런데 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료의원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막말들이 공공연하게 오고가고 있습니다. 정치 파트너를 ‘악의 축’으로 바라보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당론에 얽매이거나 지도부의 눈치 보느라 상황이 점점 심해지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지금은 쌍방울 그룹에서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상태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입니다. 이 부지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와중에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당선됐습니다. 40대 초반의 소장파 이 의원은 보좌관 시절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여야 관계가 점점 싸늘해져가는 걸 느끼고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화영 의원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열린우리당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한나라당 의원들과 사적인 만남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이 가장 먼저 만난 한나라당 의원은 김용갑 의원이었습니다. 군 출신으로 총무처 장관을 지낸 김용갑 의원은 안보문제에 매우 강경한 우파지만 할 말은 거리낌 없이 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자는 요청을 거부하는 김용갑 의원을 열린우리당 소장파 의원 몇몇이 의정활동의 경험과 조언을 해달라며 억지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 김 의원은 저녁삭사를 마치고 이화영 의원 등에게 ”386은 빨갱이고, 굉장히 나쁜 놈들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김용갑 의원은 “당신들과 당이 다르므로 당신들 정책과 생각을 반대할 수밖에 없겠지만 단지 386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대들을 미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를 지켰다고 합니다. 사사건건 상대를 공격하고, 만나기만 하면 싸우더라도 모두 시민의 대표로서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지 정당에 따라 양극화된 사회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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