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칼럼] “국회 새해 예산안, 경기도에서 배우시오”
새해 예산안이 아직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내일(12.19) 다시 여야가 협상을 벌이기로 했지만 올해 안에 통과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이와 달리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는 12월 17일 예산안을 확정했습니다. 경기도의회는 2023년 예산 33조 8104억원을 확정 의결했습니다. 2022년 제3회 추경예산 35조 9344억원도 함께 확정 의결됐습니다.
당초 경기도는 새해 예산을 33조 7790억원을 편성했는데 도의회 심의 과정에서 0.09%인 314억원이 늘어났습니다. 증액 사업은 352개(자체사업 293건, 국비사업 59건)입니다. 새해 예산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핵심공약사업인 노인일자리 확대, 예술인 기회소득,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 등이 반영됐습니다.
경기도의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국민의힘이 각각 78석으로 여야 동수라 각종 조례와 안건, 정책 처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표결 결과 가부 동수가 되면 부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부 동수 부결은 도의회 출범 때부터 예상됐던 일입니다. 재보선 등으로 의석수가 변동되지 않는 한 가부 동수 부결은 자주 나타날 겁니다.
실제로 김동연 지사의 역점사업인 ‘GTX 플러스’ 기본용역 추진 사업이 지난 9월 제2차 추경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기도 했습니다.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해 두 달 가까이 표류하다가 상임위원회 찬반 투표에서 가부 동수로 부결 처리된 겁니다. 그러나 경기도는 도의회와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해 협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회기를 하루 연장하기는 했지만 이같은 협치 노력으로 여야가 계속 소통하고 협의한 끝에 새해 예산안이 통과됐습니다. 눈에 띠는 건 지역상권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지역화폐 발행지원 예산의 원안(904억원) 통과입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역화폐에 대해 부정적인데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은 지역화폐를 고스란히 살려두었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 지원 예산(7억4000만원)과 추모비설치 예산(1억원) 통과도 경기도의회의 여야 협치에 기대를 걸게 합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부터 안산 선감도에 부랑아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설립해 1980년대까지 운영한 수용소입니다. 8∼18세 아동·청소년 수천명을 강제 수용해 강제노역·폭행·학대·고문 등 인권을 짓밟았습니다.
지난 10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선감학원 사건이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 결론내렸습니다. 선감학원 운영 주체였던 경기도와 국가의 사과와 피해회복 지원을 권고했습니다. 김동연 지사는 희생자 추정 묘역을 찾아가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된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경기도지사로서 유가족과 국민들께 사과했습니다.
선감학원이 문을 닫은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중앙정부와 관선지사 시절에 저질렀던 일입니다. 김동연 지사는 사과를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경기도의회는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피해자 지원 예산을 깎지 않고 원안대로 통과시켰습니다. 경기도 거주 피해자는 1인당 위로금 500만원, 생활안정지원금 월 20만원씩을 받게 됩니다.
경기도에서 여야협치가 처음 이뤄진 건 2014년 민선 6기 남경필 도지사 때였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50석,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78석이었습니다. 경기도 차원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남경필 도지사는 대한민국 정치 및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명분으로 연정을 제안하자 야당이 받아들여 여야협치가 이뤄졌고 적지 않은 협치 성과가 있었습니다.
역시 여소야대였던 2010년 민선 5기 때 김문수 지사의 독선과 야당의 강한 견제로 여야 충돌이 잦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경기도 여야협치가 순조로울 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좋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기도에서 배워야 합니다. ‘절대다수당’인 야당을 무시해서는 예산도 입법적 뒷받침도 받을 수 없다는 걸 왜 모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