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칼럼] 이태원 참사 이후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에 차려빈 빈소에 한 시민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

지금은 애도와 수습의 시간입니다. 창졸간에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어이없는 대형참사를 지켜본 시민들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도 어루만져야 합니다. 정부여당은 신속하게 사고 수습을 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 최우선순위를 사고수습과 후속조치에 두겠다”고 밝힌 것은 올바른 대응입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세월호 이후 최대의 참사라는 비유가 많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가 아닙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아니 위험한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참사입니다. 세월호 침몰의 교훈을 잊었기에 “현재진행형인 시민안전 대참사”(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가 터진 겁니다.

2014년 그 해 봄은 우울했습니다.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소중한 목숨이 스러져가는 현장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고스란히 지켜보던 시민들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숨쉬기도 미안한 사월”(함민복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을 보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서 애도를 표시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시민들은 스스로 탈출한 생존자들 외에 단 한 사람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좌절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세월호에 온갖 부패의 고리가 엮여있음을 알고 절망했습니다. 조대엽 고대 교수의 탄식처럼 “마땅히 살려야 할 생명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 중증의 식물국가”였습니다.

“내(어른들)가 잘못했다” “이게 나라냐”며 한숨짓고 눈물짓고 슬퍼하며 시민 모두가 집단적 우울증에 걸린 듯이 살았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대한민국을 바꾸자는 반성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구조나 체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정부가 두 번 바뀌었지만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이 안 바뀌었기 때문에 참사가 또 터진 겁니다.

문민정부 때 많은 대형참사가 터졌습니다. 하늘에선 비행기가 떨어지고, 바다에선 훼리호가 가라앉고, 강에선 다리가 붕괴되고, 호수에선 유람선에 불이 나고, 땅에선 열차가 탈선하고 백화점이 무너져 소중한 목숨이 허무하게 스러졌습니다. 문민정부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후 수습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은 전적으로 문민정부가 책임졌습니다.

사고 수습과 대책 마련이 정부여당만의 일은 아닙니다. 야당도 함께 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중앙당과 지역위원회의 정치일정을 취소하고 피해자 지원이 빈틈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정의당도“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안전대책 미비점도 파악해야 한다”면서 초당적 협력과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습과 대책마련을 정부여당에만 맡겨선 안 됩니다. 벌써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이태원 인파는 예년 수준”이었으며 “시위 때문에 경찰이 분산됐고, 경찰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고 발뺌부터 하고 있습니다. “주최가 없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라며 일부 상인들과 축제 참가자들에게 책임을 넘기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하되 이태원 참사의 진상은 밝히고 책임은 단호히 물어야 합니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그대로 놔둘 수 없다는 도덕적 성찰의 계기는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문제를 짚어내고 해결책을 찾아야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정의당은 지원과 안전대책 마련 등 시민 안전을 위해 여야 원내대표가 빨리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지원하려면 여야 원내대표의 만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태원 참사 수습과 지원 보상을 넘어 이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거대한 성찰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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