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영화산책] ‘프렌치수프’에게 위로받는 법?


“인생에 요리는 에너지를 준다. 맛은 인생의 쓴 맛을 위로한다”

프랑스 트란 안 훙 감독이 놓쳐서는 안 되는 미식(美食) 영화를 선물했다. 작년 칸영화제 감독상 작품이다.

여자(줄리엣 비노쉬)는 천재적 손맛 쉐프다. 남자(브느와 마지멜)는 미식연구가이자 메뉴 크리에이터. 전형적인 프랑스 부르주아. 배경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골.

두 사람은 20년째 요리연구가와 쉐프로서 동거하고 있다. 함께 요리하고 함께 먹고 마신다. 직장동료인지 연인인지 부부인지 애매모호하다. 남자는 틈만 나면 결혼하자고 하지만 여자는 저어한다. 내 방에 당신이 들어오려고 할 때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갈음한다. 20년째 삶을 프렌치 퀴진에서 함께 손발과 미식 감각을 맞춰보며 살아 왔으니 어느 커플보다 깊고 역지사지하다.

베트남계 트란 감독은 비주얼 미장센에 아주 강하다. 그는 프랑스 유명 미식저술가 브리야 사바랭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엮었다. 브리야 사브랭의 그 유명한 말이 바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이다.

파리의 샹젤리제 고급 레스토랑, 미려하고 디자인 감각적인 정찬 코스가 아니다. 남프랑스 시골 유명 맛집의 자존감 깊은 신토불이 가정식이 나온다. 프랑스 구릉지대 텃밭에서 방금 뜯어온 푸성귀에 푸른 잔디 뛰놀던 송아지 뒷다리 찜이 감칠맛 식감 더해주는 자연 소스와 만난다.

인생에 요리는 에너지를 준다. 맛은 인생의 쓴 맛을 위로한다. 싱싱 식재료, 소스, 양념, 불 조절, 끓임, 조림, 볶음, 삶음, 숙성 그리고 컬러풀한 고명 플래이팅 한 접시가 고개 숙인 일상을 벌떡 일어나게 한다.

와인은 왜 존재하나. 와인은 어떻게 음미하는가. 값비싼 명품 와인을 왜 굳이 추종하는가. 남자가 주도하는 프랑스 남성 미식클럽은 그 이유를 말해준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요리 프로그램을 정성스럽게 펼쳐낸다. 그들은 언어로 사랑하지 않고 요리 플레이팅으로 말 걸고 따뜻한 혀로 음식 음미하는 소리로 화답한다.

수십대 카메라 현란한 화면이 없다. 한 두대 카메라로 물처럼 흐르며 식도락의 맛과 향과 색감을 소스라치게 보여준다. 관객의 시점은 2시간15분 동안 너무 편안하다. 달궈진 팬과 냄비 속에서 창조되는 메뉴의 융합 사운드가 영혼을 깨운다. 물고기처럼 펄펄 뛰는 효과음에서 풍미와 식감이 폭발한다.

거기에 두 중년의 묵직하고, 눈물 콧물 절제된 사랑이 일품이다. 엔딩자막 피아노연주 OST가 나올 때까지 어떤 음악도 없다. 요리가 음악이다.

프렌치 수프

* 여자와 남자는 한때 연상연하 실제 부부였다. 20년 만에 만나 멋진 커플 연기를 펼쳤다. 프랑스말은 마주보고 식사를 나눌 때 최적의 언어임을 증명해 보인다. 1964년생 비노쉬(퐁네프의 연인들), 역시 필자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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