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영화산책] ‘퍼펙트데이즈’…변기 닦는 나의 도쿄 아저씨


76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퍼펙트데이즈는 과연 올까

욕망이 제거된 일상의 반복…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반복되는 일상이 삶이 되더니 어느덧 뉘엿뉘엿 생애가 된다. 노래 연극 영화 뮤지컬, 좋은 시를 향유하다 자주 눈물 흘린다. 절로 나온다. 부끄러워 몰래 닦는다. 늙어가는 건가.

도쿄 중심가 시부야 구역 공공화장실 청소원 중년 남자. 오늘도 열심히 노동하고 있다. 영화는 인구 1400만명 거대도시 도쿄가 내뿜는 소리를 들려준다. 세계 4대 도시 도쿄의 출퇴근 사운드를 생생하게 증폭시켜 준다.

독신 남자는 성실하고 단순하다. 새벽 출근해 노동의 절차를 밟는 그의 업무태도는 신성하기까지 하다. 낡은 차를 타고 노동의 장소로 이동하며 60, 70, 80년대 올드팝을 듣는다. 시니어세대 남자는 아날로그하다. 카세트테이프가 아직도 플레이되는 차를 운전한다. 맑은 날인지 레인이 주룩주룩 나리는 날인지에 따라 분위기 맞는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손으로 밀어 넣는 아날로그를 즐긴다.

홀로 사는 남자는 다다미방 이불을 갠다. 키우는 화분에 충분한 물을 뿌린다. 세면하고 작업복 장착한다. 맡은 구역 공공화장실 변기들을 청소하는 장면은 묵언수행에 가깝다. 소변기 대변기 안팎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손거울을 갖다대며 문질러 완벽하게 청결을 완성한다. 게으름이 없고 대충이 없다. 대체 왜 그럴까.

영화 상영 1시간이 지나서야 남자는 대사 첫 마디를 한다. 옅은 미소에 고개의 끄덕임으로만 표현하는 남자. 일상의 루틴으로 인생의 비의를 한 칸 한 칸 쌓아 간다. 새벽에 깨어나, 씻고, 일하고, 먹고, 쉬고, 마시고, 하루 분량 만큼 읽고 잠 잔다.

다다미방엔 수백 개 카세트테이프가 한 켠에 가지런하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문고판 서적은 벽 서가를 가득 채운다. 이번 주엔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를 읽었다. 단골 이자까야 여주인은 과묵하고 지적인 남자를 늘 환대한다.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삽입한 올드팝들을 직접 선곡했다. 도쿄를 배경으로 한 장편 뮤직비디오이기도 하다. 주인공 히라야마 역할 야쿠쇼 코지(일본 국민배우)는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를 구도자적 캐릭터로 구축했다.

코지는 인터뷰에서 “화장실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배설하는 곳이다. 연기하면서 그런 곳을 깨끗하게 하려는 마음과 노동이 매우 아름다운 행위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한다.

영화엔 유머도, 오락도, 액션도, 갈등도, 분노도, 투쟁도 없다. 훈계도 없고 타인의 삶에 간섭도 없다. 말없이 스스로 할 바를 반복한다. 일의 마침으로 자신의 존재 증명을 확인한다.

그늘 벤치 남자는 올림푸스 필름카메라로 단풍나무 이파리가 가득한 하늘을 찍는다. 일렁이는 이파리 사이로 햇살이 스며든다. 흔들리는 이파리가 수놓은 하늘을 배경으로 순간과 찰나를 찍어 둔다.

남자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을 구분하듯 사진기 필름을 인화해 차곡 차곡 보관한다. 스카이트리(높이 650m 전파송출타워) 아래 도쿄의 소소한 일상은 아날로그로 기억돼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이전된다.

삶에 완결은, 방점은 뭘까. 남자는 오늘도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화장실 변기를 닦고 있다. 당신은 무언가를 깨끗하게 청소해본 적이 있는가.

도쿄의 새벽을 달리는 남자의 눈이 짓물린 듯 촉촉하다. 그렁그렁하다. 엔딩 4분 간 롱테이크는 걸작이다. 웃을 듯, 울 듯, 출근길 운전대 잡은 야큐쇼 코지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하다.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이 흐른다. 두 눈에 희로애락의 파도가 치고 삶의 춘하추동이 배어나온다.

지금이 쌓여 오늘을 종료한다. 오늘이 쌓이고 이어져 한 생을 완료한다.

? 루 리드 ‘퍼팩트 데이(Perfect Day)’
? 벨벳 언더그라운드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
? 밴 모리슨 ‘브라운 아이드 걸(Brown Eyed Girl)’
? 니나 시몬 ‘필링 굿(Feeling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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