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영화산책] ‘역린’…조선은 왜 망했을까?

영화 <역린> 속 정조(현빈 역)는 지혜롭고 헌신적이며 정의로운, 시대가 바라는 영웅이었다. 

■ 재위 기간만 51년, 조선 최장수(83세) 국왕 영조.
자신 생모가 천민인 무수리 출신이라는 피할 수 없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숙종의 총애를 받은 숙빈 최씨(영조의 어머니)는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해 뽑힌 궁녀 출신이 아니었다.

숙종 집권기, 양대 붕당 중 하나인 소론은 왕세자(경종, 재위 4년만에 병사)를 밀었고 노론은 숙빈 최씨 소생 왕세제 연잉군(영조)에게 베팅했다. 결과는 노론의 승리.

조선 후기 ‘파워군주’ 영조는 출발부터 노론의 울타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노론은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누렸고, 소론과 친한 사도세자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반도는 각성의 나라가 아닌 긴 수면국으로 잠든다. 시기는 바로 지리상의 발견과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발호의 첫 신호탄 시국이었다. 기실 영조의 긴 집정기는 조선의 몰락 시그널이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중국 중화사상을 핑계로 호가호위했다. 아무 걱정 없이 내부 ‘안위 투쟁’에 몰입했다. 지구촌 격변을 아예 인지하지 못했다. 중화라는 청나라도 동시 병행 몰락의 길을 걷는다. 섬나라 열도 일본은 달랐다.

젊은 사도세자는 성격이 괴팍했다. 누구 탓일까. 때마침 사도세자의 살인을 서슴지 않는 일탈과 기행은 노론의 “왕위계승 불가” 주장을 뒷받침했다.

결국 사도세자는 삼복더위 뒤주에 갇혀 9일 만에 죽는다.(임오화변, 1762년 영조38년) 이 참극의 현장을 목격한 세손(정조, 1752~1800)은 숨죽인 듯 은인자중하며 세손 수업을 받는다. 1776년 영조 승하로 25세 때 조선 22대 국왕에 즉위한다.

여기서 잠깐, 조선의 붕당정치를 살펴보자. 붕당(朋黨)이라 함은 학문적·정치적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림 계파. 선조 시대 이후 훈구파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사림파들이 훈구에 대한 처리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뉜다. 온건파는 서인으로, 강경파는 동인으로 분리된다. 최초의 집권파는 동인. 동인은 다시 서인에 대해 온건한 남인과 강경한 북인으로 갈라진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남인이 이를 견제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참으로 오늘날과 같지 않은가. 가관이었다.

숙종 시대 당파논쟁을 거치며 서인이 주도권을 잡았고, 남인을 가혹하게 탄압한다. 서인은 다시 남인 처분을 놓고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분열된다. 처음에는 소론이 정권을 잡았으나, 영조가 즉위하며 노론이 우세해졌다. 노론의 권력은 점차 국왕 영조도 능가할 정도였다.

사도세자는 이러한 노론을 견제하고자 소론과 친밀히 지냈으나 결국 노론에게 제거 당한다. 이후 노론은 다시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시파와 이를 무시한 벽파로 나뉘었는데, 벽파가 정권을 잡는다. 

이 즈음 주목해야할 인물이 있다. 영조 정비 정성왕후가 죽자 1759년(영조35년) 15세 소녀로 51세 연상인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로 책봉된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다. 친정이 노론의 중심가문 경주 김씨였고, 사도세자 내외가 어머니뻘 되는 자기보다 10세 연상인 데서 빚어지는 갈등 때문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결론, 영조 이 노인이 미친 거다. 노욕이 조선을 망친 것이다.

말년의 그녀는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서거하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신료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수렴청정을 실시하였는데, 스스로 여자국왕(女主)으로 칭하고 신하들도 그의 신하임을 맹세하는 등 국왕의 권한과 권위를 행사한다. 정조 장례가 끝나자마자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이었던 시파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조선이 마구 망하기 시작한다. 친일? 아예 조선은 갖다 바쳐지는 허약체였다. 그런데 지금 누구 탓을 하고만 있는가. 제국주의를 아는가. 약하면 먹히고 강하면 먹는다. 

영화 <역린>속 정조(현빈 분)와 정순왕후(한지민 분) 

정조의 취임 일성은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 노론세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한국 영화 <역린>은 이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역린>은 실제 역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팩션(Faction,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영화다. 정조 원년 1777년 7월 28일에 일어났던 정조 암살 시도 사건인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역변이란 ‘반역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변’을 뜻한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노론 영수 홍계희의 손자인 홍상범 등이 주축이 돼 정조를 죽이고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전군 이찬을 추대하려고 한 역모 사건이다.

<역린>이 재현한 1777년 7월 28일 ‘정유역변’ 그날 밤의 이야기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은 ‘도둑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자.

“밤에도 임금은 존현각(尊賢閣)에 나아가 촛불을 켜고서 책을 펼쳐 놓았다. 곁에 내시 한 사람이 있다가 명을 받고 호위하는 군사들이 숙직하는 것을 보러 나간 뒤, 좌우가 텅 비어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보장문(寶章門) 동북쪽에서 회랑 위를 따라 은은하게 울려왔다. 기와 조각을 던지고 모래를 던지어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한참 동안 도둑이 들어 시험해 보고 있는가를 살피고, 친히 환시(宦侍)들을 불러 횃불을 들고 수색하도록 지시했다. 기와 조각과 자갈, 모래와 흙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마치 사람이 차다가 밟다가 한 것처럼 되어 있었으니 틀림없이 도둑질하려 한 흔적이 있었다.”

영화는 임금의 숙소 존현각 지붕에서 떨어진 기와 조각, 모래와 흙 한 줌에서 살아남으려는 임금, 주군을 살리려 목숨 거는 내관, 임금을 죽이려는 노론의 쿠데타 음모, 그리고 조선 최고의 살수(청부살인 자객)가 얽히고 설킨 팽팽한 스토리라인을 빚어낸다. 여기에 왕과 내관의 오랜 인간적 유대감, 내관과 살수의 형제애, 살수와 궁녀의 러브 스트리를 직조하듯 버무린다.

영화 <역린> 스틸컷

금일살주(今日殺主). ‘오늘 임금을 죽이라’는 명을 받은 날쌘 자객들이 정조의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에 침투한다. 미리 역모 사실을 알고 있던 정조는 억울하게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고 칼을 휘두른다. 왕의 목을 노리는 칼잡이들과 일합을 불사한다. 용(龍)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역린·왕의 분노를 의미)을 건드리며 젊은 개혁군주 시해를 시도하는 노론 기득권층. 영화 <역린>은 그날 하루 궁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시시각각 추적한다.

현빈이 역할하는 집권 1년차 정조는 노론을 등에 업은 권력자 대왕대비 정순왕후(한지민 분)에게 모욕을 당하는 무력한 왕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신이 명실상부한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기다리고 기다릴 줄 아는 긴 호흡의 왕이었다. 심성이 어진 왕의 위기를 붙잡아 준 것은 학문의 깊이였고 심신의 수련이었다. 위태롭지만 부드러웠다. 흔들렸지만 곧은 심지로 스스로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이면서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렸다.

정조는 중용(中庸) 23장을 신료들에게 연거푸 설파한다. ‘백성의 나라’를 꿈꾸지만 힘이 미약한 스스로를 다잡는 마술적 주문이기도 했다.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할만큼 불안한 정조가 매달린 기도문이기도 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정유역변을 계기로 정조의 견제 세력인 노론이 일부 제거 된다. 정조는 한꺼번에 서두르지 않았다. 20여명이 죽음을 맞이했고, 20여명이 귀양을 갔다. 은전군 이찬 역시 임금으로 추대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정유역변은 세력이 약했던 정조가 정국을 자기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정유역변을 무사히 넘긴 영화 속 정조는 노론들의 ‘살수 양성소’를 찾아간다. 그들의 수괴 광백(조재현 분)과 마주한다. 광백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 정조를 향해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냐”고 비아냥댄다. 정조는 그의 목을 단 칼에 벤다. 그리고는 내관 상책(정재영 분)이 읊었던 중용 23장을 한 번 더 되새긴 뒤 스스로 이렇게 다짐한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베어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팩션은 동시대 관객의 소망을 알레고리적으로 만족시켜준다. 불온한 시대 불합리한 현실, 미욱한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바를 역사스토리 시공간 속 누군가를 주인공 삼아 자기편으로 동일시하면서 대리 만족을 한다. 어질고 속 시원한 리더십을 갈구하는 이 시대. 시도하다 좌절된 ‘의문사의 주인공’ 정조 캐릭터는 또 다른 변주를 기다리고 있다.

정조 또한 봉건제 모순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 또한 왕권 강화를 통한 조선 구습 체제 강화였다. 시대를 읽지 못했다. 서세동점, 서양 문물이 제국주의 무장으로 닥쳐올 것을 꿈에도 생각 못했다. 문제는 산업동력이다. 시대에 응전할 엔진(모터)이 있는 민족과 없는 민족은 생사가 갈린다. 그 엔진을 구하는 게 정치다. 지금 정치인이 엔진과 모터를 아는가.

우리의 미래는 이렇다. 1800년대 조선은 닥쳐옴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응전과 대처마저 못했다. 결국 100년 후 같은 아시아의 사이비 제국주의 일본에 먹혔다. 귀 닫으면 망한다.

2 comments

  1. 한국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수천년 야만족 왜구의 임진왜란.정유재란에 대항해서, 결국 우수한 화포나, 화차, 비격진천뢰의 폭탄, 우수한 화력을 가진 수군의 선방이 있어서 이를 극복했습니다. 명나라와의 연합도 주효했습니다.그리고 불법.강제의 을사조약.한일병합에 대항해서, 고종의 을사조약 무효선언, 전국 각지의 의병, 독립군의 헌신, 임시정부의 노력으로, 카이로선언이후, 임시정부가 프랑스.구소련.폴란드에 승인받은 국제법 자격을 가졌습니다. 해방당시부터, 임시정부의 자격은 대한제국,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 포츠담.카이로선언은 국가원수들의 선언으로 미군정보다 상위법입니다)등과, 동등하게 그 자격이 있어왔습니다. 임시정부자격은, 미군정법률과 또다른 존재방식으로 국제법.국내법상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현행헌법이 존재하게 된 근본적 이유는, 군주정을 택하지 않고 민주공화정을 선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에서 나옵니다. 임시정부의 정통성때문에, 1948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것입니다. 수천년 역사의 유교경전과 한나라 율령, 이에서 비롯된 삼국시대의 율령등, 동아시아 유교국으로서, 또한 韓민족으로서 우리민족의 오랜 역사를 반영한 헌법.
    헌법 전문(前文)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라하여,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기자조선이후의 수천년 역사와 중국 한나라 율령에서 비롯되어, 고구려 율령등 삼국시대의 율령에서 비롯된 많은 관습법을 함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현행 헌법전문에 임시정부의 정통성이 추가되었습니다. 임시정부는 을사조약 무효(UN도 을사조약은 무효라 함), 한일병합 무효를 선언했고, 대일선전포고를 해서, 불교 Monkey일본의 불법 강제 침략.약탈을 무효화 한것입니다. 알고보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결국 일본의 불법.강제 합병을 헌법으로 무효화 한것입니다. @공자님은 먼저 태어나신 聖人(혹은 聖天子)들의 가르침을 계승하셔서,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초월적.인격적 하느님(天)에 대한 숭배를 후세에 잘 계승하신 성인이십니다. 사람이 죽어서 그 혼이 하늘로 올라가고, 육신은 죽어서 땅에 묻히는 氣나 魄, 鬼神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잘 정리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그 귀신관은 그대로 후학들에게 전승되었습니다. 이미 죽어서 혼이 하늘로 올라간, 귀신을 너무 일상과 가까이 하실수 없으셨기에, 제사때는 공경하여 모셔야 하며, 생활에서 나타나는 굿이나 푸닥거리의 오래전 관습들인 귀신숭배에 대해서도, 禮를 표하셨습니다. 이미 죽어서 혼이 하늘로 올라간 귀신을 너무 내세우지 않으신것입니다. 너무 귀신을 일상생활에 가까이 두려고 하는 질문들에는, 체험을 거쳐야 제자들이 이해할 정도의 수준밖에 않되니까, 사는것도 잘 모르는데, 죽음에 대해 말할수 있겠는가? 하시며, 체험을 거친후에, 정립하도록, 체험의 중요성도 설명하셨습니다. 이런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의 영역입니다.형이하학처럼, 당장,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것만 인정하면, 정작 본인들은 하느님의 만물.인간창조, 하느님이 피조물이자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부여하신 성(性. 본성.마음), 조상의 혼을 거부할 수 없고, 조상제사도 거부할 수 없는 형이상학의 체험을 전승받았으면서도, 유물론자나 불교 Monkey들이 하느님의 만물창조.인간창조를 부정하고 격하하려는 주장에, 입을 다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교의 형이상학으로 보면 하느님의 만물창조.인간창조.인격신으로서 피조물중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부여하신 생각하는 능력등은 분명 수천년동안 옳은 가르침이어왔습니다. 이는 가톨릭이나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 힌두교가 무신론적인 부처 Monkey가 형이하학적으로, 창조신 브라만을 부정하고, 부처가 창조신보다 높다고 주장하여, 브라만에 항거하여 일어난 부처 Monkey의 불교를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만족 일본이 막부시대에, 한국이 전해준 선진문물을 도외시하고 불교국가가 되어, 서양 기독교에 대항하면서, 전 주민을 절에 등록시킨후,일본이 바뀜.
    창조신을 부정한 부처 Monkey류는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 브라만신을 숭배하는 브라만 계급과 그 하위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인 크샤트리아, 그 밑의 바이샤, 수드라 계층들에게 불가촉 천민으로 멸시와 하대를 받으며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 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불교 승려를 천민으로 만든, 한국의 통치계급이 괜히 그랬던게 아닙니다. 중국을 통하여 인도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중국도 인도가 불교신자를 그렇게 불가촉 천민으로 취급하는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여하튼 중국에 전파되어 여러 나라로 퍼진 불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정규 교육기관도 없이,조상제사도 거부하는 금수정도로만 외래신앙.하층계급.지식이 없는 대우를 받아왔는데, 인도와 교류하게 되면,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으로 살아가는 불교도들의 실상을 차츰 차츰 알게될 것입니다.

  2. @고대 한국의 경우, 부여 금와왕, 고구려 주몽임금, 신라 혁거세임금등은, 하늘의 신령함으로 태어난 유교의 상고시대 天子개념에 영향받은 탄생신화를 가졌습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하느님족 유교나, 가톨릭의 하느님 숭배 전통! 이 자격이 가장 중요합니다.공자님께서 태어나실때 은나라왕족의 후손이라, 그런지, 하늘에서 하늘의 사자들이 내려와 축하해주었음. 예수님은 다윗왕의 후손. 석가는 그 당시 인도의 최고신분 브라만(성직자계급)이 아닌, 정치계급의 크샤트리아 출신. 공자님은 나중에 성인임금(문선왕, 문선제)칭호 추증. 예수님은 기독교 세계 만왕의 왕.부처 Monkey불교는, 브라만에 항거한 죄로, 천 몇백년동안,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불가촉천민으로 살아옴. 조계종 천민 승려와 비슷.@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불교 Monkey 일제강점기의 종교정책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 불법강점기 당시에는,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유교국가중 하나인,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오도하고, 일본 신도(불교에서 파생된 일본 후발 국지적 신앙. 일본 국교), 불교, 기독교(일본 극소수 신앙)만 포교종교로 하여, 유교가 왜곡되었는데, 최근 다시, 주권없이, 일본 불교 잔재 망령들이 되살아나서, 별 문제없던 유교국가 한국을 다시 왜곡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주만물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창조하신 유교의 하느님. 하느님을 모시는 유교의, 공자님, 가톨릭의 예수님 숭배는 이미 2천년전에 그 기틀이 확립되어 변하지 않습니다.유교의 하느님(天. 주역의 乾元,太極도 통합하시는 하느님이심)은 인간을 창조하시고(시경:天生蒸民), 공자님께 天命(중용의 天命, 논어의 知天命), 天德(논어 天生德於予, 桓?其如予何? 하늘이 나에게 덕을 부여하셨는데, 환퇴가 나를 아떻게 하겠는가?)을 부여하시는 인격천(天)이시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통치하시는 하느님이시며(주역의 乾元.太極과 연계), 자연천(天)까지 통합하시는 절대적.초월적 하느님(天)이십니다. @브라만에 대항해 후발 신앙을 만든 불교의 부처가 창조주 범천보다 높고 창조주를 가르친다는 Monkey발상 상기시킴. 일제 강점기 불교 Monkey일본이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 유교를 인정않았음. 그리고 창조주에 대드는 성씨없는 점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한 사실. https://blog.naver.com/macmaca/223464014560

    @부처 Monkey류에 속하는, 패전국,전범국, UN적국 일본 원숭이류들! 독일처럼 반성의 과정도 보여오지 않아옴. 하느님도 모르고, 창조신도 부정하는 부처 Monkey류 모방하여 성씨 없는 賤民 원숭이 점쇠(히로히토,나루히토등 일본에서는 천황이라 부름)가,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님보다 높다고 하며 신부억압하고,목사 구타하던 일본원숭이들. 세계종교 유교도 종교 아니고 사회규범이라고 오도하던 야만족 일본. 일본 Monkey는 수천년 야만족이라 Economic Animal로 분류됨. 서양의 철학가들이 하느님,예수님 부정하고 , 교황.성직자 부정할 여건인가? 철학으로 하느님을 재단하려는 발상이 일본 원숭이 점쇠가 만든,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이자, 패전국 奴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불교 Monkey들에게서 왕성하게 창작되는 요즘. 유교가 하느님(天), 地神, 神明, 조상신 숭배하는 종교인것을 부정하기 위해, 귀신을 공자님이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견강부회하는 불교 Monkey 일본과, 토착왜구 서울대류의 왜구 원숭이들의 철학.

    놔두면, 해인사와 관련된 모 대학 출신처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일본 불교 Monkey와, 주권.학벌없는 패전국 노예 왜구 서울대 부하 원숭이가 되어, 유교에 도전하고, 승전국 미국의 종교를 비하하려고 도발해서 그러함.@일본은 막부시대에 불교국가가 되어, 유교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유일하게 전달받은 논어연구를 오랫동안 무신론적인 부처 Monkey식으로, 왜곡하여, 일본식 논어 해석으로, 다시 한국을 어지럽히려 시도하는 불교 Monkey일본과 토착왜구 Monkey들.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하고,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불교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이다. 형이상학적 문제보다는 실존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마다 다른 사회적 조건과 차이에 따라 가르침의 내용을 달리함에 따라 경전의 종류도 많다…아트만(atman: 眞我)이나 브라만(梵神)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보다는 ‘인간이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실존에 초점을 맞추었다.그러므로 부처가 깨친 진리는 형이상학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존재하는 구체적 양식, 즉 연기(緣起)로 설명된다. 이 세계는 신이나 브라만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존관계 속에서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인간생활의 실제문제와 부딪쳤을 때 그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고 곧 불교이다. 불교의 교리나 이론은 자연히 인생문제의 해결이라는 실제적 목적이 앞서기 때문에 이론을 위한 이론이나 형이상학적 이론은 배제되었던 것이다.

    .출처:불교 [佛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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