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선] 2008년 완득이는 2024년 어디서 무얼 할까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저도 키울 것입니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드네요”
# 어른들이 읽어야할 <완득이>
자기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삶은 제 눈에 안경입니다. 제 논에 물대기하며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매일 눈과 귀에 정보가 쏟아집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뉴스가 몰려옵니다. 한나절만 지나면 새 뉴스는 헌 뉴스를 몰아냅니다. 눈요기로 현혹하는 말초적 뉴스가 지천입니다. 짜증나고 경박한 뉴스만 판을 칩니다.
메마른 가슴은 감동의 콘텐츠를 기다립니다. 사람은 감동을 먹고 삽니다. 감동은 삶을 추동해주는 에너지입니다. 하루도 빼먹지 못하고 반드시 치러 내야 할 밥벌이의 일상에서 우리는 저마다 감동의 손짓을 기다립니다. 불안하고 예측이 안되고 모든 것이 가변적일 때 한 권의 책이라도 들고 있어야 합니다.
2008년 한국 청소년문학에 혜성처럼 등장한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펼칩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다가 늦깎이로 서울예대 문창과에서 문학수업을 받고 2007년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마해송 문학상,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휩쓸었습니다.
소개할 작품이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완득이>(창비, 212쪽)입니다. 2008년 제1회 블로거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나절이면 통독할 수 있는 가뿐한 분량입니다.
솟구치는 숭어가 털어내는 물방울같은 짧은 문장이 요즘 쿨한 청소년 세대들의 심경를 대변합니다. 한 편의 영화가 자연스레 떠오르듯 모든 장면들이 어깨동무하면서 쫀득쫀득합니다. 10분에 한번씩 키득거리게 합니다. 20분에 한번씩 눈물짓게 합니다. 차라리 어른들이 읽어야 될 성장소설입니다. 괜히 청소년들에게 교훈 주려고 무게 잡지 않습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경쾌한 문체는 슬픔과 소외 속에서 희망과 격려를 건져내는 해피엔딩과 잘 어울립니다.
모두가 상처가 있지요. 모든 게 첫 경험인 청소년은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고 숨기고픈 것이 있지요. 예민한 그들은 뭔가를 시도하고 꺾이면서 삶을 배워갑니다. ‘완득이의 강펀치’가 가슴을 울립니다. 이제 질풍노도의 한 청소년 가슴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서울의 달동네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17세 완득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 글의 내레이터는 도완득. ‘우리의 호프’ 완득이가 풀어내는 꿋꿋한 희망 스토리입니다.
# 난쟁이의 아들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싸움꾼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아는 게 싫어서 눈에 팍 뛰는 싸움질은 되도록 피했습니다. 단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린 놈들만 두들겨 팼습니다. 쪽팔리고 열 받아서 팼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키를 넘어섰습니다. 아버지는 키 작은 어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야, 너, 이봐, 이런 식으로 애 부르듯 불렀습니다. 카바레 영업장 앞에서 바람잡이로 일하는 난쟁이 아버지, 남남이었지만 함께 살다보니 지금은 피를 나눈 혈육이 되 버린 정신지체 춤꾼인 삼촌. 이렇게 세 남자는 한 가족입니다.
아버지는 카바레에서 저를 키웠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모릅니다. 조폭이나 다름없는 아저씨 틈 속에서 자랐습니다. 진지하게 춤을 추는 아버지를 보고 사람들은 웃습니다. 키 작은 아버지와 춤을 춘 여자들은, 아버지가 쓴 중절모에 돈을 꽂고 엉덩이까지 툭툭 칩니다. 아버지는 평상시에 거의 웃지 않지만 바람잡이를 할 때는 정말 신나게 웃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저 웃음이 정말 좋아서 웃는 웃음인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열네 살 중학교에 진학하자 서울에 작은 방을 얻어 저 혼자 살도록 합니다. 카바레에서 부대끼는 모습을 더 이상 보이기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변두리 지역이라도 꼭 서울을 고집합니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괜찮은 대학을 가는 줄 아십니다. 고등학교가 거리가 먼 2지망 학교가 배정되면서 학교 근처로 집을 옮겼습니다. 말이 근처지 개천을 따라 버스로 세 정거장을 간 뒤, 가파른 골목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나오는 옥탑방입니다. 바로 이 동네에서 조용히 살고픈 제 인생을 꼬이게 하는 조폭 스승 ‘똥주’를 만났으니… 저는 참 안 풀립니다.
# 하나님, 똥주 좀 죽여주세요
“완득이 봐라, 신체조건, 욱하는 성질, 주변 환경, 어디하나 조폭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낫 놓고 기역자는 몰라도 낫으로 지를 줄은 아는 천부적인 쌈꾼이 될 것이다. 잘 되면 나 잊지 마라.” 똥주는 애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대놓고 지껄이는 담탱이(담임선생)입니다. 저는 동네 교회를 찾아가 기도합니다. ‘똥주한테 헌금 얼마나 받아먹으셨어요. 나도 나중에 돈 벌면 그만큼 낸다니까요.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벼락 맞아 죽게 하든가, 자동차에 치여 죽게 하든가. 이번 주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저와 담탱이 똥주는 이런 사이입니다. 산동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이웃사촌입니다. (똥주는 알게 모르게 완득이 가족을 챙겨줍니다. 상처받은 완득이가 좌절하지 않도록, 일부러 확 깨는 소리해가며 ‘수호천사’ 노릇을 합니다)
# 베트남 엄마
생계를 꾸리던 카바레가 문을 닫자 아버지와 삼촌은 지하철에서 다섯 켤레에 천원하는 스타킹을 팝니다. 아버지가 고탄력 스타킹을 선전하고 삼촌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팝니다. 자기 구역이라고 폭력을 행사하는 놈들이 설치고 공익요원들의 단속이 심해지자 아버지는 96년식 티코를 한 대 사옵니다. 운전석 의자를 아버지 키에 맞춘 중고차였습니다. 이제 아버지와 삼촌은 저 티코를 타고 중국산 손톱깎이 세트와 돋보기안경을 가득 싣고 전국의 5일장을 누빌 것입니다.
교무실로 절 부른 똥주는 느닷없이 “니 어머님, 베트남 분이더라?”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한번도 말한 적이 없고, 저도 물은 적이 없습니다. “네가 아버지를 안 닮았다고 했더니 좋아하시더라. 많이 걱정했나봐. 네 어머님. 성남에 계신다. 우리 교회에 외국인노동자 쉼터가 있는데, 성남 쉼터하고 연결됐어.”
집 앞에 누군가 서 있습니다. 제 어머니라는 그분입니다. 한번도 본 적 없지만 제 가슴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똥주 이 인간이 다리를 놨구나. 촌스러운 꽃분홍색 술이 달린 낡은 단화를 신은 그분은 하얀 봉투를 내밀고 돌아섰습니다. ‘미안해요. 잊고 살지 않았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미안해요. 전화할 수 있으면 전화해주세요. 000-000-0000. 안 해도 돼요.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저는 편지를 봉투에 도로 넣고 방바닥에 휙 던졌습니다. 무슨 모자상봉이 이렇게 허무한지. 그분이든 저든 눈물 한 방울 흘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 어머니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습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그분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이상한 춤이나 추면서 남한테 무시당하며 사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떠났다고요! 이 여자 저 여자 아무나 손잡고 춤추고, 아무나 당신을 만지고…… 더 빨리 완득이를 찾으려고 했지만, 당신이 집하고 직장을 바꾸는 바람에 그렇게 못했어요. 담임선생님이 그래요. 완득이는 싫다는 말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는 말 못한대요. 아니, 안 한대요. 그냥 속에 담고 산다는 거예요.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한대요.”
그분에게 나도 모르게 “한국에 왜 오셨어요?” 이런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밥이라도 마음 놓고 먹고 싶었어…..” 그분이 웃으며 말합니다. 가끔은 울음보다 웃음이 더 가슴을 저릿할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 춤에 웃는 사람들. 그 웃음에 웃음으로 대꾸해주던 아버지. 아버지와 별반 다를 게 없던 삼촌….. 그리고 지금 그분의 저 웃음이 그렇습니다.
베트남 시골 사람이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 귀화했는데도 다른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외국인노동자 취급을 받는 그분이 개천 길을 내려갑니다. 몸이 움직입니다. 제 몸이 미쳐서 움직입니다. 저 꽃분홍색 술이 달린 낡은 단화 때문입니다. “따라오세요.” 앞장서서 정류장 앞 시장 신발 가게로 들어갑니다. 아침 신문배달해서 킥복싱 체육관비 내고 조금 남았습니다.
“신발 몇 신어요?” “ 난 괜찮아요” 저는 반짝거리는 작은 리본이 달린 검정 구두를 집었습니다. 서둘러 가격을 물었습니다. “이만 오천 원인데 이만 삼천 원만 내.” 얼른 이만 오천 원을 주인아주머니 손에 쥐여주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이천 원은 팁. 그런데 그분이 이천 원을 들고 나왔습니다. 낡은 꽃분홍색 단화까지 들고. 그분이 내 손에 이천 원을 쥐여주십니다. “고마워…..” 그분 턱이 파르르 떨립니다. 턱까지 흘러내린 눈물이 덜렁거립니다.
# 아들아 내 아들아
아버지가 제게 말하십니다. “카바레 숙소 사람들이 그 사람을 팔려온 하녀 취급하는 게 싫었다. 내 부인이 아니라, 자기들 뒷일이나 해주는 사람으로 알더라. 가는 모습 봤는데 못 잡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날 안받아줬다. 춤은 그나마 다른 사람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나도 내 몸이 싫었다. 이게 나한테 끝나는 게 아니라 멀쩡한 너한테까지 꼬리표를 달아주더라. 부모가 도움은 못돼도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는데, 내 아들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말을 한마디씩 해. 그래서 되도록이면 너하고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내가, 네 아버지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길 바랐다. 그렇게 나를 숨겼던 게 오히려 너까지 숨어 살게 만든 것 같다.”
“선생님한테 얘기 들었다. 너, 너하고 관련 없는 일에는 지독하게 무심하다고.” 똥주가 저에 대해 관찰 일기를 쓰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하여간 똥주. “녀석….. 다리 긴 것 좀 봐. 근사하게 컸네…..” 아버지가 제 허벅지를 툭툭 칩니다. 근사하게 컸다는데 왜 가슴이 울렁거리는거야. 아버지 눈이 갑자기 빨갛게 되는 바람에 괜히 저까지 눈이 아픕니다.
요즘 킥복싱이 미치도록 좋습니다. 제 몸을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제 몸을 잘 움직여줄 수 있는 체육관을 찾았습니다. 킥복싱, 마음에 듭니다. 제가 진짜로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줍니다. 어쩐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새로 찾은 기분입니다.
우리 반 ‘항상 1등’ 정윤하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윤하는 저하고 얘기하면 맘이 편하다고 합니다. 1등과 꼴찌가 남몰래 교회에서 데이트를 합니다. 윤하는 대학 가면 배낭여행 많이 다닐 것이고 장차 종군기자가 되겠다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걸고 취재하겠답니다. 킥복싱 시합하다 얻어터진 제 눈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윤하에게 그만 뽀뽀해 버렸습니다. 첫 키스인데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토마토에 입을 댄 것 같았습니다.
개천 길을 올라갑니다. 하늘의 구름이 찢겨져 보이는 것도 즐겁습니다. 꽃 냄새 나는 껌을 씹었나? 향기가 입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히히. 아버지와 제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저도 키울 것입니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드네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 스똬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