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유년시절 스포츠의 꿈과 가치 되찾아준 라오스팀, 너무 고맙습니다”
[아시아엔=정연창 트레이너] 2월 24~26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서 최초로 개최된 인도차이나반도 국제야구대회 지원을 다녀왔다. 이만수 감독님과 대화를 하며 내가 라오스 대표팀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과 라오스에 오게 된 과정 등을 이 글을 통해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직업은 선수들 부상 예방과 부상 후 재활 및 체력 향상 등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일이다. 선수 트레이너(Athletic Trainer), 체력 코치(Strength & Conditioning Coach)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런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20대 젊은 시절 큰 부상을 당했지만, 당시 열약했던 스포츠 재활 수준으로 인해 몇 번의 재활 실패를 경험하면서 나 같은 부상으로 고통받는 선수들에게 올바른 부상 재활과 예방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프로야구팀 수석 트레이너가 되고 어느 날 문득 내 직업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승부의 세계인 프로스포츠에서 내가 매일 감당하고 있는 업무가 과연 내가 꿈꾸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과정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멀리 라오스에서 야구를 전파하는 ‘레전드’ 이만수 감독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의아했다. 메이저리그까지 포함해 야구인으로서 모든 영광을 받은 감독님께서 평안한 노후를 버리고 왜 이역만리 더운 나라에서 저렇게 고생하실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에 가득했다. 감독님의 마음을 알기까지 그 이후로 4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토록 바라던 프로야구팀 수석트레이너가 되었지만 뭔가 공허함을 메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조금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구단의 단장님과 감독님의 만류를 뒤로 하고 실업 럭비팀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 생각은 하나였다. 야구는 좋지만···. 하루하루 승부의 세계 속에서 진정한 스포츠의 가치와 트레이너로서의 처음 마음가짐을 찾아볼 수 없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고.
비인기 스포츠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내가 잊어버린 것을 찾고자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4년 시간이 흐른 후 너무 지쳐 트레이너로서의 직업을 포기할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직업이 그렇게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다. 세상에서 나의 직업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의 틀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라오스 야구대표팀에 대한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고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여전히 라오스 야구를 이끌고 계시는 이만수 감독님을 보면서 ‘저분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12년 동안의 스포츠팀 생활에도 이렇게 지쳤는데… 어떻게 저렇게 남을 위한 삶을 살까?’라는 질문과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감독님께 연락을 드리고 강릉 전지훈련을 도와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라오스 야구선수들을 도와주러 간 것이 아닌, 나의 트레이너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만남이었다.
야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조건도 대가도 없이 그들을 돕는 야구인들 그리고 제인내 대표님을 비롯해서 조건 없이 라오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잊고 있던, 또는 세상이 잊고 있던 스포츠와 야구가 사람에게 해야 할 역할과 꿈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 야구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이만수 감독님의 홈런을 친 후 기뻐하던 시그니처 모습, 장종훈 선수가 일본에서 장외 홈런을 날리던 모습, WBC에서 준우승하던 모습들···. 야구는 우리나라 최고 스포츠로서 유년 시절의 나와 사람들에게 기쁨과 꿈을 주었다. 수십억, 수백억의 몸값이 연일 매스컴에서 언급되지만 야구와 스포츠의 본질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을 보면 하루하루 고된 훈련과 드래프트의 압박감 속에 웃음을 잃어 간다. 현실이라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는 경쟁이니까 그렇다. 다만 어린 시절 신문지를 말아 글러브로 만들고 산에서 나무를 주어와 가다듬어 방망이로 만들어 “너는 이만수, 나는 송진우”라고 부르며 꿈을 키웠던 그 모습을 라오스 야구선수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고 다행스럽다.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앞으로도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능력으로 감독님의 사역을 도와 나갈 생각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라오스 선수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라오스 선수들이 스포츠의 꿈과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야구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야구로 인해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골목길에서 야구를 하며 꿈을 꾸던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 시절 우리의 꿈과 희망을 라오스 선수들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라오스 선수들 응원을 당부드리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