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캄보디아야구협회 ‘심판위원장’을 ‘명’ 받았습니다”
[아시아엔=최홍준 헐크파운데이션 대외협력 부장] 쳄 다라(Chhem Dara) 캄보디아야구협회(CBSF) 협회장의 결혼식에 초청받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다녀왔다. 캄보디아 결혼식은 2~3일에 걸쳐 성대하게 진행되며 신부 아버지가 목사님이라 그런지 결혼식 자체가 피로연을 포함해 술 없이(non-alcohol) 진행되었다.
캄보디아 야구와의 인연은 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과거 캄보디아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이들을 만나 밭(?)에서 바로 심판으로 투입돼 경기 중 거대한 소가 난입하는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난 2월 하순 라오스 국제 대회에서 재회하여 캄보디아 야구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캄보디아 야구는 현지에서 Pastor, Kevin Kim으로 불리는 한국인 교수님이 본격적으로 씨앗을 뿌리고 건강하게 자라나게 되었는데, 결혼식에서 우연히 뵙게 되어 야구란 단어조차 없는 캄보디아에서 최초 야구팀 창단과 이들의 잠실구장 시구 등 마치 영화 같은 캄보디아 야구 역사와 현지 상황을 자세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따로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3월 31일 나는 정식으로 인가받은 캄보디아야구협회의 심판위원장이 되었다. 캄보디아 올림픽위원회 회관에서 나를 심판위원장으로, 미국인 앤드류(Andrew)씨를 국제협력개발관으로 하는 임명식이 있었다. 나는 공식적으로 캄보디아야구협회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당장 올해 토너먼트 심판 파견과 캄보디아 최초의 심판 강습회를 준비해야 한다.
내가 캄보디아 야구에 주목하는 까닭
야구에서 내가 잠시 잊을 뻔한 희망과 기쁨이 캄보디아 야구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들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스폰서를 찾기 위해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은 채 거리청소를 하는 자세와 야구를 통해 사랑을 나누고 교육과 일에서 긍정적인 도전정신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나의 야구는 과연 어떨까, 나를 돌아보게 됐다.
캄보디아는 1970년대 킬링필드로 알려진 대학살(지식인 포함 200만명 추산, 즉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숨짐)을 겪은 나라다. 인적자원은 물론 경제발전도 당연히 주변국들에 비해 뒤쳐졌다. 이런 악조건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야구를 높게 사는 건,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이미 자생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이들은 올림픽위원회 회관에 자리잡아 선거로 임원을 선발하고 조직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협회장을 필두로 야구장과 함께 리조트를 동반한 캄보디아 최초의 스포츠타운 계획을 세웠다. 단순히 꿈같은 얘기가 아니다. 부지를 이미 매입하여 비록 기간이 오래 걸릴 지라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금은 뿌리를 두텁고 더 단단히 내리는 시기라고 본다. 강한 자생력이 있기에 도움이나 원조란 말보다는 우리가 그들과 협력, 협업,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면 언젠가 캄보디아 야구는 어느 곳보다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