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잠깐묵상] 내 뼈를 묻을 명당

희노애락 인생 길 살아내고 마지막 순간, 나는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사진 박노해 시인>


통독 본문 창세기 49~50장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 50:25)

성골과 진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골품제도에 나오는 최상위 계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금수저, 은수저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전까지 비슷한 의미로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성골, 진골이라는 것은 풍수학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지리적 특징과 인간의 길흉화복을 연결시키는 것이 풍수지리학입니다. 풍수지리학에 의하면 조상의 뼈를 어디에 묻느냐가 자손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골이란 부모님의 묘를 최고의 명당에 모실 수 있는 계급입니다. 신라시대에는 왕족이 성골이었습니다. 이른바 ‘뼈대 있는 가문’입니다.

그런데 묫자리가 꼭 그 사람이나 그 가문의 경제적, 사회적 능력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할 장소를 정할 때 고인이 된 분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또한 ‘뼈를 묻는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 한 몸 바쳐 헌신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디어디에 뼈를 묻었다’는 말 속에는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았는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의 끝 부분에는 요셉의 유언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집트에서 떠날 때 자신의 뼈를 가지고 나가달라고 합니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이집트에서 살았지만 이집트에 뼈를 묻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총리로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그는 자기 본연의 정체성에 대해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뼈가 묻히길 원하는 곳, 그것은 그 사람이 어디에 가치와 소망을 두고 살았는지를 말해줍니다. 어디에 뼈를 묻기를 바라시나요? 나는 어디에 뼈를 묻은 사람으로 기억될까요?

예수님은 갈보리(해골)에 뼈를 묻을 각오로 사셨습니다. 그 때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곳이 진정한 명당(명예의 전당)이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이 갈보리 언덕 너머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