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다른 세대, 다음 세대’
출애굽기 12장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출 12:6)
10대 청소년들은 사춘기가 오면 말수가 줄고 대답이 짧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춘기 청소년 4대 단답형 대답이 있습니다. ‘아니요’, ‘몰라요’, ‘그냥요’, ‘왜요’입니다. 여기에 시크한 표정까지 곁들이며 ‘됐거든요’까지 시전하면 어른들은 말문이 턱턱 막힙니다.
그런데 이 중에 유일하게 여지를 남기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왜요?’입니다. 이 질문에 어른이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대화가 연결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자녀들이 던지는 질문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출애굽과 유월절의 의미를 물어보는 자녀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세대들에게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공손하고 진중하게 질문하는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기가 싫어서 이런 거 도대체 왜 하는 거냐고 반항하듯 얘기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버르장머리는 오고 가는 세대에 영원한 고민거리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런거 굳이 해야 되냐, 왜 해야 되냐 따지듯 묻는 자녀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세월이 지나면 잊혀집니다. 감동과 감격을 맛보았던 세대가 가고 나면 본질은 희미해지고 형식만 남기 마련입니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예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그저 따라 하고 있는 것들이 전통과 관습으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경험한 1세대에게 유월절은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들에게는 왜 하는지도 모르는 관행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앙 안에서 의미를 두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의미를 느낄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 때 아이들은 퉁명스럽게 물어볼 것입니다. “왜요?”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하다 여기며 행하던 많은 것들. 다른 사람들도 하니까, 예전부터 하던 거니까 나도 하는 것이라면 아이들이 던지는 단순한 질문 앞에 진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어른들이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다른 세대가 되기도 하고, 다음 세대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