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무엇이 진정한 보상일까?

흥부전 <출처 란일러스트> 


창세기 18장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창 18:2)

아브라함은 길에 서 있는 행인 세 사람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세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은 아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복된 소식도 듣게 되고, 소돔의 멸망 소식도 미리 알게 되어 조카 롯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보고 나면 평생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나그네들이었지만 그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뜻하지 않은 보상이 주어진 것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히 13:2, 새번역)

사실 누구를 대접하거나 선행을 베풀 때 보상에 대한 눈꼽만큼의 기대도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음에 눈꼽이 낄 때마다 세수하듯 마음을 닦아낼 뿐입니다. 내가 이만큼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도 이만큼 해주실 거야 하는 기대가 아예 없을 수는 없습니다. 섬김과 봉사의 동기 이면에서 보상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지운다는 건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그러나 마음의 무게중심이 보상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가장 큰 보상이 무엇인지를 알면 됩니다. 진짜 보상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보상의 대용품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상의 대용품에 마음이 빼앗겨서 타인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내 보상의 수단으로 삼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놀부같은 경우가 극단적인 예입니다. 놀부에게는 흥부가 받은 보상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 아무렇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받을 보상을 위해 상대의 고통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래도 보상이라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을 베푸는 것이 선을 베풀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예수님은 조금 더 성숙한 태도를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가장 큰 보상은 내가 거저 받았다는 깨달음입니다. 상을 이미 충분히 많이 받았기에 이제는 더 받지 않아도 괜찮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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