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정 신문 자랑 좀 하렵니다”…동아일보 ‘산화, 남겨진 사람들’로 관훈언론상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가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이미지는 동아미디어그룹 뉴센테니얼본부가 히어로콘텐츠와 관련해 뉴스룸 혁신 전략 메시지를 반영해 제작한 스티커. <사진출처 동아미디어그룹 사보>


동아 ‘산화, 남겨진 사람들’로 저널리즘 혁신부문 관훈상 수상

‘환생:삶을 나눈 사람들’,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2년째 쾌거

2년 2개월여 전,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히어로콘텐츠팀을 출범시킨다는 사고를 냈다. 동아의 저널리즘 가치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협업하는 조직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히어로콘텐츠는 심층취재와 참신한 그래픽, 동영상, 디지털을 결합해 독자의 주목을 받는 복합 콘텐츠다.

동아가 100년간 축적한 역량을 발휘, 탐사보도나 내러티브 스토리부터 기존에 없던 콘텐츠, 활자, 영상, 디지털에 이르기까지 파급력이 큰 콘텐츠를 구현하겠다고 했다. 그 결실로 히어로컨텐츠팀이 기획시리즈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로 올해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5기 히어로콘텐츠팀 기자들. 왼쪽부터 이기욱, 김예윤, 지민구, 위은지, 이소정 기자. <사진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작년에도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로 같은 저널리즘 혁신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창간 100주년을 맞아 출범시킨 ‘히어로콘텐츠’가 기자들의 DNA를 바꾸고 있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권위의 관훈언론상의 같은 부문을 같은 취재팀이 연패連覇를 달성한 것은 극히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5기까지 이어진 히어로콘텐츠는 디지털에서 뒤처졌다는 평가의 동아의 디지털화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고품질 복합 콘텐츠 제작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필자의 친정 동아일보의 ‘퀄리티 저널리즘’ 시도와 쾌거에 성원과 박수를 보낸다. 히어로콘텐츠팀은 기자·개발자·디자이너 등 10여명이 수개월간 콘텐츠를 만드는 TF 조직이다. 일종의 별동대, 일본말로는 유군인 셈이다. 활자로 채워진 지면 중심을 넘어 내러티브·인터랙티브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올드미디어에 비판적인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15일 5기수상자(수상 발표 전)들을 만나 인터뷰 했다. 지민구(팀장)·위은지(기획)·김예윤·이소정·이기욱 기자 등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히어로콘텐츠가 조직과 개인에게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타사 기자는 ‘부럽다’고 했다. 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인 탐사보도는 데스크와 취재기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운영방식과 성과가 바뀐다. 하지만 히어로콘텐츠는 2년 가까이 일관성 있게 운영됐다.”

시스템이 정착돼 누가 오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체계와 환경이 갖춰졌다는 거다. 일관성과 지속성이 히어로콘텐츠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히어로콘텐츠가 불러온 가장 큰 변화를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하나의 주제를 수개월 동안 취재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간지 기자들에겐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하루살이 취재를 한다. 그러나 히어로콘텐츠는 시간 제약 없이 한 주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심층취재를 위한 여건이 마련돼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젊은 기자들은 ‘히어로콘텐츠 출범’을 “동아가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히어로콘텐츠를 통해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초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며 “연차가 쌓이면서 슬럼프가 왔는데, 히어로콘텐츠팀에 참여한 후 왜 기자가 됐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동아일보 창간 9년 뒤인 1929년 3월 28일 자에 실린 타고르 시와 관련 기사

동아일보로서도 세포이자 모세혈관인 젊은 기자들이 직업적 성취와 효능감을 느끼게 만든 건 큰 다행이다. 한국기자협회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전략을 가장 잘 실천한 언론사’를 꼽는 질문에서 동아일보라는 답이 1.9%가 나왔다. 지난해 대비 1.0%p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기자협회보는 “히어로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디지털 시도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동아를 디지털 불모지로 여기는 인식이 사내외에 팽배했다. 변화에 늦고, 디지털화에 관심도 없는 조직이라는 혹평이다. 그것은 내가 10년 전 편집국장을 할 때도 그랬고, 그후 이어져왔다.

“히어로콘텐츠가 만들어진 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회사가 저널리즘 측면에서 좋은 디지털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5기)

심층취재 부서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각은 못마땅할 수 있다. 특성상 업무속도가 느리고, 성과도 즉각 나타나지 않아서다. 그래서 현장기자들은 ‘죽어라 뼈 빠지게 구르는데 탱자탱자 여유롭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동아일보 기자들은 히어로콘텐츠팀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도 기회가 닿으면 갈 수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모든 구성원이 히어로콘텐츠에 참여 기회를 주는 목표란다. “히어로콘텐츠는 편집국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참여 기회가 있고, 편집국 차원에서 인원 확대를 해나가고 있다”(김예윤)

“히어로콘텐츠를 경험한 기자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편집국 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이소정)

경영진의 전폭적 지원도 한몫했다. “디지털과의 통합을 고민하는 언론계에 저널리즘 혁신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인정을 받았다.”(김재호 사장 신년사)

히어로콘텐츠팀에는 취재기자뿐 아니라 사진·편집·그래픽 기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참여한다. 다양한 직군의 개성이 강한 팀원들은 원팀으로 만들긴 쉽지 않아, 팀내 소통을 ‘통역’이라고 칭했다. “조율이 필요한데, 쉽지만은 않다.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업무를 이해하기 위해 혼자 코딩·디자인 공부를 하기도 했다. 중간에서 적극적으로 통역을 했고, 회의도 자주 열었다” (위은지)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취재 과정에 참여시키려 노력했다. 기사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때 투표권을 주고, 의견을 들으려 했다. ‘같이 만드는 콘텐츠’라는 동기 부여를 위해 애썼다”(지민구 팀장)

작년의 2기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든 ‘환생-장기 기증’ 시리즈도 눈부신 작품이었다. 관훈언론상 저널리즘 혁신 부문 외에 한국 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대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5기 히어로콘텐츠팀은 제복 공무원의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동료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꾸몄다. 그 스토리를 담은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콘텐츠 제작을 위해 내러티브 기사 작성을 공부했다. 배우며 취재해 걸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팀장 지민구가 기획한 콘텐츠로, 편집국 공모를 통해 최종 낙점됐다.

히어로콘텐츠팀은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고 허승민 소방위의 배우자를 심층 인터뷰했다. 그리고 한국·미국의 보훈 시스템을 비교해 대안을 제시하는 폭넓은 시야도 제시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 익숙한 일간지 기자들이 내러티브 작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스터디하고, 자문도 구했다. 이전 기수의 콘텐츠를 내러티브 형식으로 다시 써보기도 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임현석 기자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대학교 교수님께 원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소 4~5명의 피드백을 받고 기사가 나갔다.”(지민구)

기자들이 가장 어려운 것이 재해 현장이나 영안실에서 마주치는 유가족 취재다. 이들도 유가족을 섭외하는 일이 난관일 수밖에 없었다. “유가족 입장에선 인터뷰 중 그때의 감정과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인터뷰 섭외를 왜 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납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이소정)

동아일보 ‘환생’시리즈를 총괄한 ‘히어로콘텐츠팀 2기’ 기자들이 출연하여기획, 취재, 보도 등 제작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튜브.

히어로콘텐츠팀은 2건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작했다. 유품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고, 소방차량 출동 과정과 소방관 개인보호장비를 직관으로 보여줬다. 전국 119종합상황실에 2.6초에 한번꼴로 신고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2.6초마다 스마트폰 모양의 아이콘이 한 꼭지씩 떨어지게 만들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전달력의 극대화를 꾀했다. 취재 결과물의 포장을 넘어, 독자 몰입에 신경을 썼다.

아사히신문의 사장을 지낸 전설적인 언론인의 얘기다. “오늘날처럼 독자들이 알고 싶은 복잡한 사건들이 많을 때도 없다. 그러나 그 복잡한 사건이나 현상들을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기자들이 적을 때도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피가 뚝뚝 흐르는 날 것도 독자들이 입에 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만큼 ‘전달’이 중요하다. “기사를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기사를 작성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기사를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된 것 같다”(이기욱)

역시 팀장은 다르다. “장기적으로 히어로콘텐츠팀이나 탐사보도팀은 없어져야 한다.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퀼리티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과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현재는 과도기인데, 히어로콘텐츠가 그 계기가 됐으면 한다.”(지민구) 

동아일보뿐 아니라 언론계 전체에 히어로콘텐츠 같은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 그게 ‘레거시 미디어’, 이른바 전통의 올드 미디어가 생존할 유일한 길이다. 새로운 시도가 나오고, 선의의 경쟁이 이뤄져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음을 파고드는 콘텐츠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세계 유수의 신문으로 디지털화에도 성공한 모범생으로 단연 뉴욕타임스(NYT)가 꼽힌다. 10년 전 ‘눈사태(Snow fall)’라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작해 전세계 언론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최고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아프리카 분규 지역에 몸소 출장을 가 영상까지 제작을 했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 변화에 힘을 쏟지 않으면 신문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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