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당면한 국가 과제···한국 2015년 ‘마약지수’ 20 넘어

멕시코 경찰이 힐로틀란에서 마약 범죄 조직과 총격전을 벌인 후 마약조직 `라 파밀리아 미초아카나’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성(가운데 부상자)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 10년 전 장면이긴 하지만,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선 마약 피해가 줄을 잇고 있으며, 한국 또한 점점 그 가운데 하나로 빠져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달라”고 말했다. 10월 24일에도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 회동에서 “마약 근절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10월 26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회를 열고 국무조정실 산하 ‘마약류 관리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용산경찰서는 10월 12일 마약수사 단속팀 배치 계획을 세웠으며, ‘핼러윈 축제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 계획’을 만들면서 단속팀을 15명으로 배정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과 당정협의회 이후 10월 28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50명으로 증원됐다. 사복 경찰관 가운데 50명은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8시께 마약 단속을 위해 이태원에 투입됐다.

이들은 이태원 중심가인 이태원로와 세계음식문화거리 주변 주점 등을 순찰한 뒤 9시48분부터 용산서 형사과장 등과 함께 이태원파출소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태원 파출소는 참사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100m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가 우려될 만큼의 인파가 운집하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예방 조치에 나서지 않았으며, 일부 형사들이 사고발생 22분후에 현장에 출동했다.

사망 158명과 부상 196명이 발생한 이태원 참사 당일 서울 용산경찰서는 이태원에 경찰 병력 총 137명을 배치했으며, 그중 약 40%가 형사 부서에 해당한다. 이는 교통과 통행 관리보다 마약사범 등 수사에 집중이 됐다. 경찰은 사전에 수립한 계획대로 병력 배치를 하고 당일 배치된 총 137명 외에 빠져나가거나 추가된 경찰은 없다고 밝혔다. 압사사고로 마약단속은 취소되었다.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이란 말은 옛말이 되었다. 마약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는 대한민국은 2015년 이후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했다. 통상 한 국가 마약지수(Drug Index: 인구 10만명 당 검거된 마약류 사범의 숫자)가 20을 넘으면 마약을 통제할 수 없는 사회에 진입했다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2015년 20을 넘었고 최근엔 그 두 배에 가까워졌다고 보고 있다.

국가정보원 등에 따르면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 러시아 마피아 등 국제 범죄조직과 연계된 마약범죄가 최근 4년 사이 국내에서 급증했다. 국제 범죄조직들 사이에 “한국에선 수익률이 높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이들이 국내 마약 밀반입과 유통 시장을 확장하여 마약 거래의 ‘거점’으로 삼으려 한다.

지난 한 해 국내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1295kg으로 2017년 154kg과 비교하면 8배로 급증했다. 마약이 연령과 계층을 불문하고 급속도로 퍼지는 상황이며, 마약류 사용자가 1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전에는 ‘마약’ 하면 유흥가, 조폭 깡패들을 통해서 유통되었으나, 그 흐름이 이제 연예인을 비롯하여 회사원, 학생, 가정주부까지 일상에 파고들어 ‘마약의 대중화’가 시작되고 있다.

온라인, SNS에 마약 음어인 ‘아이스’ ‘작대기’ 등을 검색해도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10-30대의 마약 투약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인터넷 마약류 사범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마약 사범 중 인터넷 사범은 12.4%였지만, 2021년에는 24%로 2배 가량 늘었다. 마약 사범 증가세가 뚜렷하여 지난 2018년 8107명이었던 마약 사범은 2019년 1만명을 돌파한 이후 작년까지 3년 연속 1만명대를 기록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검거된 마약 사범 가운데 10-20대 비율은 2017년 15.8%에서 작년 34.2%로 4년 새 크게 늘었다. 이는 마약 사용자가 더 젊어지면서 고학력자로도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조사 때는 마약사범의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자부터 전문대 졸업자까지만 있었던 반면 지난해 조사에는 대졸자(18.8%)와 대학원 이상 졸업자(1.7%)도 있었다.

지난 9월 1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주변에 다른 손님들이 있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빨대를 이용해 필로폰으로 추정되는 흰색 가루를 흡입하는 것을 지켜본 손님이 112에 신고했다. 강남경찰서는 마약을 투약하던 40대 남성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했다. 최근 서울 강남 유흥업소에서 마약이 든 술을 마신 손님과 종업원이 사망하면서 마약 범죄 심각성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마약 사범을 적발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외국에 있는 거대 조직이 대량으로 마약을 국내에 들여오므로 핵심 조직원 몇몇을 붙잡으면 조직 소탕까지도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은 IT(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보안 메신저로 마약 판매상과 은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코인)로 거래가 가능해졌고, 해외에서 마약을 소량 구매해도 배송 받을 수 있는 물류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이에 마약 판매자나 구매자를 붙잡은 뒤, 어떤 사람들과 거래했는지 자백을 받아내는 방법이 사실상 유일하다.

마약 가격이 낮아진 것도 마약의 대중화를 촉진하는 요소다. 10년 전에는 필로폰 1
회분(0.03g)이 통상 10만원이었지만 최근에는 2만-3만원 안팎까지 낮아졌다. 이에 마약 1회분을 치킨 한 마리 또는 피자 한 판 값으로 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필로폰 1g이 태국에서는 2만원 안팎이며, 미국에서는 6만원 수준이므로 해외와 비교하면 아직은 마약 가격이 비싸지만 점차 저렴해지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10월 8일 대검찰청 월례회의에서 “마약류 범죄가 국경을 넘은 온라인 거래를 통해 연령·성별·지역·계층을 불문하고 확산돼 임계점을 넘은 상황”이라며 대대적인 수사를 예고했다. 그는 “경찰청·관세청·해양경찰청·국가정보원 등과 합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 마약 밀수와 유통을 집중 단속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다크웹(dark web) 마약거래 전담수사팀’을 이르면 내년 1월 서울중앙지검, 부산지검, 인천지검 등 3곳에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크웹’은 일반인이 흔히 사용하는 익스플로러·크롬 등 웹 브라우저나 네이버·구글 같은 검색 엔진으론 접근이 불가능하지만,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접속할 수 있다. 다크웹에 들어가면 접속자의 IP(인터넷 접속 주소), 신분, 위치 등이 암호화된다. 이 때문에 다크웹은 세계적으로 마약 밀매, 음란물 거래, 자금 세탁 등 각종 범죄 수단으로 악용된다.

검찰은 국내에서 다크웹 하루 접속자가 25만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마약 거래 등 범죄 목적을 위해 접속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다크웹’을 통한 마약 ‘해외 직구’가 급증하는 현상 등에 주목하여 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전담수사팀 가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마약 범죄 대응을 위해 다크웹 전담수사팀, 마약 범죄 특별 수사팀, 마약 수사 실무 협의체 등 ‘3중 대응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다크웹을 통한 마약 거래에는 가상화폐가 이용된다. 즉 마약 매수자가 국내에서 다크웹에 접속해 가상화폐를 지불하면 해외 판매책이 국내 유통책에게 국제우편 등으로 마약을 보내고 이를 매수자가 전달받는 방식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다크웹 수사는 인터넷 검색 기록 분석, IP·가상 화폐 추적 기술 등이 필수적이라 전문 인력의 신규 채용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취임 직후인 8월 11일 강남권 일대 유흥업소·클럽 내 마약류 집중단속 계획을 내놨다. 단속기간은 10월 31일까지 약 2개월이다. 이에 따라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가 편성됐다. TF에는 마약수사대·형사·생활질서·정보·외사·안보수사지원·사이버 등 전 기능이 참여해 첩보 수집부터 다크웹 추적, 신고 대응, 점검·단속 등을 진행한다. 클럽이 밀집된 강남·용산·마포·서초·수서·송파경찰서에도 전담팀을 꾸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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