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칼럼] 나쁜 번역가, 나쁜 대통령

1993년 괸즈 대통령(왼쪽)과 김영삼 대통령의 한-헝가리 정상회담. 김 대통령 옆에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통역을 맡았던 박진 장관이 앉아있다.

“확실한 건 나쁜 번역가는 나쁜 대통령보다 문제를 덜 일으킨다는 점이다.”

2015년 10월 6일 오늘 세상을 떠난 괸츠 아르파드 헝가리 첫 민주 대통령의 말입니다. 괸츠 대통령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데 임기 첫해인 1990년 11월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해 노태우 대통령과 만났으며, 1993년 11월에는 대전 엑스포 ‘헝가리의 날’ 행사에도 참석했습니다.

1956년 헝가리혁명에 참여해 옥살이를 했던 괸츠는 1990년 8월 헝가리 대통령이 됐습니다. 취임 직후 괸츠 대통령 인터뷰를 한 미국의 <볼티모어 썬>의 기사 제목은 ‘아르파드 괸츠 : 철강 노동자, 변호사, 희곡작가, 번역가, 헝가리 대통령’이었습니다. 헝가리는 우리나라처럼 성을 앞에 쓰는데 영어식으로 뒤에 붙여 아르파드 괸츠로 쓴 겁니다.

1989년 10월 23일 헝가리에서 43년 공산통치가 끝났습니다. 1990년 첫 자유선거로 구성된 의회는 괸츠 아르파드를 첫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괸츠는 1995년 재선됐고 2000년까지 10년간 재임했습니다. 헝가리는 의원내각제라 실권은 총리에게 있고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헝가리 민주화에 괸츠의 공이 컸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공산통치가 끝나기 꼭 33년 전인 1956년 10월 23일 동유럽 공산주의 나라들 가운데 처음으로 공산주의 반대 시위가 헝가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를 헝가리혁명이라 부릅니다. 총리 재임 중 탈공산주의 정책으로 실각했던 너지 임레가 10월 24일 다시 총리로 선출됐습니다. 너지 총리는 소련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소련군이 헝가리를 침공해 혁명을 총칼로 억눌렀습니다. 소련은 KGB 비밀재판을 거쳐 너지 임레 총리를 1958년 6월 16일 교수형 시켰습니다. 너지는 1989년 명예회복이 되었고, 그가 묻힌 부다페스트 교외 시립묘지에서 매장식이 다시 치러졌습니다. 너지와 헝가리 시민의 오랜 민주화의 꿈이 이뤄졌고, 괸츠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괸츠는 정부의 언론탄압을 비판하다가 의회로부터 불신임당하기도 했습니다. 1991년 우파였던 언털 요제프 총리가 국영 라디오와 TV 방송사 사장을 해고하려 했습니다. ‘정치적 균형감의 부족’이 명분이었습니다. 비속어 보도를 ‘자막 조작’을 통해 ‘국익 자해’를 한 ‘가짜뉴스’라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MBC에 대한 압박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헝가리 시민들이 ‘엉클 알피’라 부르며 지지했던 괸츠는 86% 지지율로 임기를 마쳤습니다. “나쁜 번역가는 나쁜 대통령보다 문제를 덜 일으킨다”는 건 대통령 직무수행의 어려움을 비유한 것인데 괸츠는 공산통치 아래서 생계를 위해 하루 10시간씩 번역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2022년 7월 8일 선거유세 중 피격당해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아베 신조는 일본 최장수총리입니다. 아베는 2006년 9월 ‘강한 일본’을 내세워 총리가 되었지만 채 1년도 안 된 2007년 9월 그만두었습니다. 2012년 12월 다시 총리가 된 뒤 3연임을 하고 나서 2020년 9월 물러났습니다. 아베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는데 뒷말이 많았습니다.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의견이 다른 경쟁자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있지 않아서 일본 국회가 논의의 장이 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야당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일이 되풀이되었다”는 겁니다. 나아가 야마구치 교수는 “아베 정권 때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베는 국유지를 친구가 경영하는 학교법인에 싼값으로 팔았습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은 정부가 주최하는 공적 행사인데 자기 후원회원들을 사적으로 초대했습니다. 야마구치 교수가 지적한 아베 총리의 문제점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드러납니다. 또 아베는 ‘소(재)·부(품)·장(치)’ 파동을 불러일으킨 경제보복 조치 등 우리나라에 대해 매우 도발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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