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칼럼] 청년정치의 희망···’40대기수론’ 김영삼·김대중에서 이준석·박지현까지
9월 17일, 9월 셋째 주 토요일인 오늘은 여섯 번째 청년의 날입니다. 청년의 권리를 보장하고 청년발전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청년 문제에 대한 관심 높이고자 2020년에 청년기본법을 시행하면서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청년의 날 행사가 미뤄져 11월 6일에 치렀습니다. 그 바람에 각 당 대선후보들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우리나라 ‘청년세대’의 현실정치 참여는 매우 초라한 수준입니다. 2020년 4월 15일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20대 2명 30대 11명 40대 38명이 당선됐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30대 의원이 10명 40대 의원이 26명입니다. 20대 의원이 모두 30대가 되었고, 30대 의원 일부가 40대로 40대 의원 상당수가 50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청년기본법에서는 ‘청년’을 19세 이상 34세 이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청년 정치인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나이만으로 청년정치인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많더라도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국정에 적극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거나,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드는데 앞장서면 청년정치인이라 불러도 될 겁니다.
김영삼 대통령을 우리나라의 대표적 청년정치인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25살에 국회의원이 되었기 때문에 청년정치인으로 평가하는 건 아닙니다.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려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야당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현실을 거부하고 대통령선거 출마 의사를 밝혀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40대기수론’을 주장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야당 원로·중진들은 “정치적 미성년” “구상유취(口尙乳臭)‘라며 40대기수론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러나 40대 중반의 김대중 40대 후반의 이철승이 동조하면서 40대기수론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제7대 대통령선거 신민당 후보 경선은 40대 3명이 맞붙어 치러졌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후보가 되지 못했고, 60대가 되어서야 대통령이 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70대 대통령이었습니다. 40대기수론 이후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이끌어 왔습니다. 비판도 많이 받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현실안주를 거부했던 청년정치인이었습니다.
30대 후반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대표적 청년정치인입니다. 박근혜 키즈로 20대에 정치에 입문한 이 대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매번 졌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의 대표로 선출된 뒤 정권교체를 성공시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당에서 쫓겨날 상황에 놓여 있지만 이 대표는 보수정치세력에 새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30대 40대가 정치지도자로 활약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광란의 파티’ 영상으로 구설수에 오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36살입니다. 21살 때인 2006년 사회민주당 청년 조직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마린은 2019년 34살 때 총리가 됐습니다. 지금은 물러났지만 제바스티안 쿠르츠 전 오스트리아 총리는 31살 때 총리가 됐습니다.
유럽연합(EU) 27개 나라 가운데 10개 나라가 30~40대 대통령·총리가 있습니다. 39살에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40대입니다. 덴마크와 벨기에 총리도 40대입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30대에 벨기에 총리를 지냈습니다.
청년정치의 역할은 낡고 썩은 정치에 대한 비판과 도전일 겁니다. 이준석 대표나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잘한 것만은 아니지만 기성정치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과 지적을 해왔습니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에는 현실안주를 거부하는 이런 움직임을 ‘내부총질’이라며 불편해하는 기류가 남아 있습니다. 청년정치의 길은 아직도 멀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