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정치칼럼] ‘팍타 순트 세르반다'(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

2022년 2월 3일 첫 대선 토론을 앞두고 심상정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대선 후보. 이들이 이날 한 말들은 지켜져야 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 추진을 전당대회에서 결의했지만 정치개혁 정치혁신이 민주당만의 숙제는 아닙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모든 정당 모든 후보들이 입을 모아 정치개혁을 약속했습니다. 지방선거를 치르면서도 정치개혁 약속을 재확인했습니다. 선거 때는 약속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나 몰라라 해왔던 악순환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국민의힘도 정치개혁을 약속했습니다. 집권했으므로 지켜야 합니다. 아니 정치개혁은 국민의힘에게 더 급한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집권은 했지만 의회 권력은 여전히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국회를 패싱하고 시행령만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비대위와 가처분 사이에서 당은 표류하고 있습니다. 정치개혁을 망설일 여유가 없습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 추진에 뜻을 모으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치개혁 방안은 다 나와 있습니다. 정치개혁 논의가 한 두 해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각종 개혁방안의 장단점이라든지 우리나라 적용 가능성 등도 이미 다 검토가 끝난 상태입니다. 다만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다보니 합의과정에서 개혁이 후퇴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3∼5인 선거구) 문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개혁의 하나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양당 독점체제를 깨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최소 3인을 뽑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했습니다. 기초의원 정수를 ‘3인 이상 5인 이하’로 설정하고 서울·경기·인천에만 우선 적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의힘은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지 않다며 반대했습니다. 명분은 기초의회가 정당정치에 휘둘릴 우려를 내세웠지만 속내는 지방의회 의석 일부를 소수정당이나 무소속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폐해가 드러난 양당 나눠먹기의 달콤함에 취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협상을 질질 끌었습니다.

선거를 겨우 46일 남겨두고서야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 중재로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기초의원 정수를 ‘2인 이상 4인 이하’에서 ‘3인 이상 5인 이하’로 바꿨지만 11곳(수도권 8곳과 영·호남 충청권 각 1곳씩)에서만 시범 실시했습니다. 제도의 효과와 문제점을 분석하기에는 너무 적었는데, 이를 근거로 철회나 연기하는 퇴행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정치개혁 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해서가 아니라, 지방선거가 코앞이라 먼저 다뤘던 겁니다. 이제 나머지 정치개혁 과제들을 국회가 다루어야 합니다. 시기도 알맞습니다. 전국 단위 선거가 2023년에는 없으므로 차분하게 정치개혁을 다룰 수 있습니다. 우선 2024년 총선에 대비해 선거제도 개혁문제부터 집중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의 요체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이 독점하는 나눠먹기 구도인 ‘적대적 공생의 양극화 정치’를 끝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방향은 잘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추진된 겁니다. 정치독점구도를 깨기 위한 여성정치참여 확대, 정당설립의 자유 보장 등의 활발한 논의를 기대합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은 사례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제19대 국회 막바지에 테러방지법이 제정됐습니다. 2016년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고 이를 막기 위해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했습니다. 38명의 의원이 8일 27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하였으나 선거법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중단했습니다.

그 때 야3당은 제20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테러방지법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20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1당이 되었습니다. 야3당 가운데 어느 당도 테러방지법개정안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제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180석이나 차지했지만 테러방지법개정 문제에 대해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그 동안 정치인과 정당이 말하는 정치개혁과 시민이 생각하는 정치개혁에는 간격이 있었습니다. 제도적 문제로만 접근하다보니 시민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시민이 ‘잘 했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팍타 순트 세르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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