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겜’ 에미 감독상·주연남우상 등 6관왕, K-컨텐츠 날개 달다

<오징어 게인> 첫번째 게임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의 인형과 주연 이정재 <사진 연합뉴스>


황동혁 “내 생애 최고의 순간···시즌2는 더 어둡고 심오해”


이정재, “인간관계의 깊이 있는 얘기···천재가 쓴 시나리오다”

비영어권 언어의 넘사벽 넘고 ‘기생충’ ‘미나리’ 이어가

나도 에미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그 오징어게임(오겜)을 봤다. 그러나 9부작을 다 보고난 뒤 기분은 참으로 더러웠다. 그 정도까진 아니로되 뭔가 찝찝하달까 말로 표현하기 그랬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의문의 서바이벌(Survival) 게임.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생존게임에 목숨을 걸고 아귀다툼을 하는 인간 군상들. 오겜은 살아남아 돈을 챙기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팀을 꾸려 뭉치는, 극한의 게임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설정의 기괴함, 죽고 죽이며 선혈이 튀고, 인간 내면의 잔학무도함, 살아남기와 돈을 연결한 악마적 플롯(Plot).

이정재는 “천재가 쓴 시나리오”라고 했지만, ‘악마의 구상’일 수도 있다. ‘모든 걸 처음 본 듯한 낯섦, 오겜의 세계 1등, 넷플릭스 상업주의를 그저 좋아해야만 하나?’ 나도 회의했다.

그것을 비판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글을 ‘영원한 청년’ 장기표가 썼다. 나는 장기표 형의 글을 일별하곤, 역시 “장기표답다”고 환호를 질렀다.

글 제목은 “‘오징어 게임’ 인기가 자랑할 일인가?”라는 쓴소리를 담았다. ‘오겜’은 대한민국의 자랑이 아니라, 엄청난 수치라고 했다.

지금 무대에 불은 꺼지고 거품 또한 꺼져버린 주식 열풍과 코인 열풍 등등. 우리 사회 양극화의 그 비참함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 제기는 하지 않고… “이런 잔인한 사회를 더 잔인하게 만들 것”이라고 장기표 형은 독설을 퍼부었다.

지구촌의 근 1억2000만 넷플릭스 인구가 ‘오징어 게임’을 시청했다. 90여개국에서 흥행, 미국 독일 일본 등 70여국에서 1위를 차지한 오겜.

그러나 오늘은 오겜을 칭찬할 수밖에 없다.

봉준호 감독

한국 드라마가 비영어권의 한계, 그 언어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서다. 73년만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봉준호 윤여정을 비롯한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에미상까지 휩쓴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가, K-컬처가 도저한 넘사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무수한 생명이 죽어나가고, 그 잔인성이 목불인견이었더라도…

아카데이 여우조연상 윤여정씨와 브래드 피트

게임이 너무 잔인해, 게임의 중단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 투표로 게임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바깥세상 또한 그 잔인무도한 게임에 못지않게 아수라장이라 다시 게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아수라 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죽고 죽이는, 그 길밖에 없다”고 오겜은 절규했다.

이정재 배우와 황동혁 감독

2022년 9월 13일 오후, 미국 LA의 마이크로소프트 시네마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장. 오겜이, 감독 황동혁과 배우 이정재가 우리 대중문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 에미상은 1949년 미국 TV 예술-과학 아카데미가 제정한 방송 분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오겜은 무려 13개 부문(남우조연상은 두명) 후보에 올라 당당히 6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앞서, 기생충과 미나리로 두번씩 아카데미 넘사벽을 깬 바 있는 저력의 우리 대중문화였다.

‘오겜’의 주연 배우 이정재와 황동혁 감독은 나란히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 섰다. 둘은 드라마 남우 주연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를 치켜 올렸다. ‘오겜’이 미국 프라임타임 에미상(본상)에서 당당히 2관왕을 차지한 순간이었다.

영광의 순간에서 주역들은 고국의 관객들과 시청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수상으로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더 나갈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제작사 대표).

13일은 한국시간이고, LA 현지로는 12일 기자간담회. 김지연 대표, 황동혁 감독, 배우 이정재, 정호연, 오영수, 박해수가 참석했다.

먼저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부터 말문을 열었다. “저희 감독님과 대표님, 넷플릭스 관계자 분들, 배우, 스태프들이 굉장히 열심히 했다는 표현보다 딱 맞는 말이 뭘까…” 이어 “나름대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드리려 노력했고, 특히 감독님과 대표님이 준비해둔 시나리오와 프로덕션이 너무나 훌륭했다”라고 칭찬했다.

이정재는 “훌륭하게 나온 세트장 안에서 연기를 생동감있게…”라며 “오래전 끝났지만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고 회고했다.

오징어 게임의 조상우역(왼쪽)의 박해수 배우

박해수(상우 역)와 오영수(일남 역)도 함께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둘 다 수상엔 실패했다.

“이렇게 귀중한 자리에 올 수 있는 것만으로 큰 상을 받은 거다.”(박해수) 박해수는 이어 “한국 문화의 역사가 되는 순간에 함께 있는 것…’이라며 뭉클해 했다.

“좀더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계기가…”(오영수)

제작사 싸이엔픽처스 대표 김지연도 시종 미소 띈 얼굴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외국 사람들도 재밌게 보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그 이상의 반응이 왔다. 지금 이 자리에 온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김지현의 클로징 멘트는 시적이다. “오늘밤 굉장한 꿈을 꾸는 것 같다.”

영예의 감독상을 품에 안은 황동혁 감독의 얼굴은 환했고, 입도 벌어졌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1년 사이에 저희에게 벌어졌다. 그 피날레가 에미에서 이뤄져서 뜻깊은 하루였다.”

“상을 못받아도 ‘모두가 위너’라고 생각했겠지만, 빈손으로 돌아가면 씁쓸했을 것…” 마지막 순간, 황동혁도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했다. “에미 트로피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한 밤”이라고도 했다.

황동혁은 “오겜 시즌2는 더 어둡고 심오하다”는 스포일러(Spoiler)로 넷플 마니아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정재는 ‘비영어권으로 주연상을 받을 수…’ 운운의 어리석은 물음에 현답을 했다. “연기자는 꼭 언어로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한다.” 언어의 벽은 결코 넘지 못할 난공불락은 아니라는 거다. 그것이 넘지 못할 벽이 아님을 ‘오겜’ 성기훈이 입증했다.

황동혁은 “올림픽도 아닌데 국가대표가 된 것 같은 기쁨이 있다”라고 했다. 역시 제목을 뽑아낼 메신저는 대표 김지연이다. “상을 받고 좋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더 잘 만든 콘텐츠들이 세계로 더 나갈 기회의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BTS의 빌보드 석권과 비견될 성과가 아닐 수 없다. K-컨텐츠가 드디어 세계 최대인 미국 컨텐츠 시장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는 평가다.

미국이야말로 지구촌 컨텐츠 산업의 일대 격전지가 아닐 수 없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피 비린내만 안 풍길 뿐, 아이디어와 창의가 격돌하는 문화 전쟁터다. 2020년 미국 컨텐츠 시장규모는 8446억 달러(약 1161조원)으로 2위 중국(3449억 달러)의 2.4배. 성장속도는 더욱 가파르게 수직상승 중이다. 3년 뒤, 2025년에는 1조 543억달러(약 1450조원)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유대인이 좌지우지하는 미국 컨텐츠 업계에 ‘황색 돌풍’을 일으킨 우리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창작물의 낭보는 K-컨텐츠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깊고 크다.

감독 황동혁은 이날 코믹하게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제가 여기 계시는 세 분이나 시즌1에서 죽여버려 그게 아쉽고 후회도 되고 다시 살려야 하나…” 황 감독은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라는 말로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남은 시즌2 더 열심히 만들어서 기대하시는 분들, 한국의 시청자 여러분들, 전세계 모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오겜’은 에미의 본상 및 크리에이티브 아츠상에서 총 13개 부문에 후보(14개)로 올랐다. 그리고 당당히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 및 감독상 등 총 6관왕을 차지, 기염을 토했다.

주요 배우 및 연출진을 대상으로 하는 본상 격의 프라임타임 에미상. 기술진과 스태프(제작진)에게 수여하는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 에미상은 크게 둘로 나눠 시상한다.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보통 ‘에미상’으로 부른다.

지난 7월 에미상 후보 발표 때 본상 6개 부문에서 명함을 내밀었다. 드라마 작품상에도 당당히 노미네이트(Nominate) 됐다. 황동혁이 감독 및 각본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정재는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 아시아인으로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이정재가 최초다.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는 오영수와 박해수, 정호연이 각각 지명됐다. 6개 중 최고 영예의 2개 부문을 당당히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수상했다. 앞서 이유미가 드라마 부문 여우 게스트상, 채경선 김은지 김정곤이 내러티브 컨템포러리 부문 디자인상을 받았다.

또한 임태훈 심상민 김차이 이태영이 스턴트퍼포먼스상을, VFX(Visual Effect·시각효과) 팀이 스페셜 비주얼이팩트상을 수상했다. 본상 2관왕에 이어 연기 및 기술부문 등 4관왕까지 모두 6개의 상을 휩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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