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국회의장 이야기⑨] 영국과 미국의 경우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영어로는 ‘Speaker of the National Assembly of South Korea’라고 합니다. 국회부의장은 ‘Deputy Speaker of the National Assembly (South Korea)’가 됩니다. 국회의원은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South Korea)’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Legislative elections in South Korea’라고 합니다.
원래 Speaker는 영국 하원의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국의 하원의장은 Speaker, 상원의장은 Lord Speaker입니다. 하원의장을 speaker라 부른 건 영국 하원의장이 역할이 하원의 결정이나 불만을 왕에게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의회 의장을 president라 부릅니다. 베네수엘라 등도 의회 의장을 president라고 합니다.
양원제인 미국은 하원의장은 하원에서 뽑지만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겸임합니다. 그러다보니 상원의장은 상원에서 큰 영향력이 없습니다. 투표권도 표결 결과가 50 대 50으로 가부동수일 경우에만 갖습니다, 평시에는 상원임시의장이 상원의장 직무를 수행합니다. 상원임시의장은 President pro tempore of the Senate라 부릅니다.
미국은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인 상원의장이 대통령직을 승계합니다. 대통령·부통령 러닝 메이트제로, 부통령이기에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유고 상황을 정상화시킬 책임과 권한을 의회(상원) 의장에게 주는 겁니다. 링컨 대통령 암살 때는 앤드류 존슨 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암살 때는 린든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워터케이트 사건 관련해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을 때는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헸습니다. 원래 포드 부통령은 하원의 공화당 대표였는데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탈세문제로 사임하자 닉슨 지명으로 부통령이 되었다가 대통령까지 됐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선거를 통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아직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미국에서 부통령까지 유고가 되면 차순위 대통령직 승계권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하원의장입니다. 대통령직은 선출직이기에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 승계도 선출직으로 하는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무총리가, 그리고 그 이후에는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으로 ‘권한을 대행’합니다.
시민이 뽑은 대통령의 권한을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행사하는 셈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때는 장면 부통령까지 사퇴했던 터라 수석국무위원인 허정 외교부장관이 장관 취임 이틀 만에 내각수반이 되어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습니다. 그리고 곽상훈 민의원의장이 일주일 정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습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정 때 윤보선 대통령이 사임하자 쿠데타 주역인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어 직무가 정지되자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때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박 대통령 파면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권한대행을 했습니다.
speaker라 불린 영국의 의회 의장직은 이미 1258년부터 존재했으며, 1377년 헝거포드 의장 때부터 공식적으로 의회에서 선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영국 하원의장은 총선 이후 첫 번째 의원 투표에서 선출하는데, 의정활동을 오래한 원로들이 정당 간 사전협의로 조정을 합니다. 하원의장 경선이 이뤄진 건 20세기에 단 두 번뿐이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처음엔 의장이 정당의 지도자였지만 입헌군주제가 된 이후에는 당적을 갖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진표 내정자가 국회의장을 미국처럼 president가 아니라 speaker로 부르는 취지에 걸맞은 국회의장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그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국회를 통해 드러난 시민의 뜻을 정부에 잘 전달하는 역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