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국회의장 이야기⑪] 서울대 박찬욱 교수의 ‘국회가 불신받는 까닭’ 진단
김진표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시민들로부터 많은 불신을 받고 있는 국회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국회가 시민의 불신 대상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국행정연구원이 올해 3월에 발표한 2021년도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도 국회가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회가 불신 받는 까닭을 박찬욱 전 서울대 부총장은 몇 가지로 짚었습니다. 먼저 대표기능 수행 과정에서 왜곡과 편향성과 무책임성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또 정책기능의 수행도 부실하고, 국회 안에서 정당간 갈등이 효과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국회의 제도적 자율성이 낮은 것도 문제라고 박 부총장은 지적했습니다.
제도적 자율성이 낮다는 건 국회가 시민·학생이나 군부 등 외부의 힘에 의해서 흔들렸던 걸 말합니다. 제1공화국 때는 4.19혁명으로 제4대 국회가 임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4.19혁명으로 세워진 제2공화국 때는 5.16 군사쿠데타로 제5대 국회가 개원한지 채 1년도 안되어 문을 닫았고 3권을 행사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회 역할을 대행했습니다.
제3공화국 때는 유신으로 제8대 국회가 해산됐고, 국회 기능은 법적 근거도 없는 비상국무회의가 담당했습니다. 유신체제에서는 제10대 국회가 10.26 12.12 5.18을 겪으면서 단명했습니다. 입법권이 없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든 법에 근거해서 임명직으로 구성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제5공화국에서는 제12대 국회가 6월 항쟁으로 역시 임기를 다 못 채우고 문을 닫았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격변을 시민의 대표가 모인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주도적으로 다루기는커녕 무기력하게 상황에 끌려갔던 건 국회의 제도적 자율성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신임 국회의장이 국회의 제도적 자율성 강화를 적극 추진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국회가 외부의 힘에 흔들리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국회가 권력에 맞서서 제도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제헌국회에서는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의장 출신이면서도 국회를 탄압하는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기도 했습니다. 유신체제에서는 선명야당론을 내세운 김영삼 의원 중심으로 유신체제에 도전했습니다.
제5공화국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등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신한민주당이 전두환 정권을 위협했습니다. 신민당은 ‘시민에 의한 정치’ 복원을 위해 국회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시민·학생들이 함께 한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졌고 국회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유신헌법과 5공헌법이 왜곡시켰던 삼권분립의 정신이 87년 헌법(현행 헌법)에서 되살아났고, 시민의 대표기능을 갖고 있는 입법부의 권한과 기능이 강화되었습니다. 까다로운 임시국회 소집요건, 제한적인 연간 개회일수 등 국회 활동을 가로막던 비민주적 조항들을 바꿨습니다. 유신헌법에서 사라졌던 국정감사권이 부활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없앴고, 대통령의 비상조치권을 긴급재정경제처분 및 명령권과 긴급명령권으로 약화시켰습니다. 헌법정신에 맞춰 국회법도 국회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쳤습니다. 청문회 제도를 도입해 광주청문회와 5공청문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국회의 제도적 자율성은 확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1991년 국회는 국회법을 고쳐 원 구성 일자를 법정화했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스스로 만든 이 법을 계속 어겨 왔습니다. 늦어진 후반기 원구성을 서두르고 국회의장 부재상태도 해소해야 신뢰도가 높아질 겁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로 무산된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도 다시 추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