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34] 대통령의 정치중립 의무
윤석열 당선인의 전국 순회를 둘러싸고 ‘지방선거 개입’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윤 당선인은 4월 11일 대구·경북 지역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온 나라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20일 호남, 21일 부산·울산·경남, 25일 경기, 26일 인천 등 대선 운동을 연상케 할 정도입니다. 국민의힘은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선 때 “당선 후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는 겁니다. 당선인이 민생현장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또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시민의 삶의 현장이나 지방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역 현안과 관련된 지방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듣기보다는 국민의힘 해당 지역 후보들과 동행에 치중한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플랜이나 공약 이행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도 전혀 없이 국민의힘 후보를 동행한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의 비판처럼 노골적인 선거 개입으로 보이는 측면들이 있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총선에서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믿는다”라는 발언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탄핵소추까지 당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하자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민련 야3당이 탄핵소추를 한 겁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은 아직 취임하지 않았으므로 대통령과는 다르지만 선거개입 논란에 휩싸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는 공직이 부여하는 영향력을 이용한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공직을 이용한 선거개입이 공공연하게 이뤄졌습니다. 현직이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 정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7년 재7대 국회의원 총선 전 열렸던 ‘목포 국무회의’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에 장애가 될 야당의원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목포에 출마한 김대중 의원이었습니다. 5.16 쿠데타 세력인 김병삼 전 체신부장관을 목포에 출마시켰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국무회의를 목포에서 여는 등 선거기간 중 두 차례나 목포에 내려와 관권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목포 가까운 광주에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선거전략을 지휘했습니다. 언론도 ‘목포의 전쟁’이라며 관심을 가졌습니다. 미국도 목포의 선거를 주목해서 주한미국대사관의 서기관이 아예 목포로 파견 나와 상주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선거법으로 이 같은 공직의 영향력을 동원한 부당한 선거개입을 막고 있습니다.
당내 문제이지만 ‘윤심 공천’ 논란도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유리하게만 작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4월 11일 대구·경북을 방문한 윤석열 당선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미안하고 죄송하다. 정책과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아 명예회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이 대구시장 후보가 되는 건 막지 못했습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 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 호남지역을 방문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TV조선 등 종편에서는 호남에서 문 대표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아진 증거라며 2012년 제19대 대선 때 몰표를 주었던 호남에도 가지 못하게 된 문 대표의 신세가 딱하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이 문재인 대표에게 호남 방문 자제를 권유한 건 문 대표가 특정 후보를 만나면 그 후보가 유리해질 수 있기에 불공정 경선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윤심 공천’ 논란과 ‘선거개입’ 논란에도 윤석열 당선인의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이것이 6.1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에게 유리할까요, 불리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