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53] 선거공학만이 판치는 지방선거

“지역에서 봉사하고 지역을 위해 고민하는 후보들보다는 당선가능성이나 당내 계파들의 역학관계로 공천이 결정될 겁니다. 선거공학으로만 접근하는 제8회 동시지방선거, 주민의 선택은 어떻게 나타날까요?”(본문에서)

1995년의 제1회 동시지방선거의 의의는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모두 주민의 손으로 직접 뽑았다는 데 있습니다. 1991년의 지방선거가 30년 만의 지방자치 부활이라는 의의가 있지만 지방의원만 뽑고 단체장은 임명하는 반쪽짜리였다면 4년 만에 단체장까지 뽑음으로써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1998년 제2회 동시지방선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 3년 동안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인 지방자치가 과연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를 따져볼 수 있는 선거였을 겁니다. 지방정부에게 많은 권한과 재정권을 넘겨주어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지방정치인을 잘 뽑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4 지방선거는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실망스러운 선거였습니다. 물론 이 문제점들은 그전에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모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인물 대결과 정책 대결의 실종, 극심한 지역 대결과 흑색선전은 여전했습니다. 선거법의 문제점도 드러났고, 언론의 선거 보도도 많은 문제점을 보였습니다.

선거는 있으되 지방은 없고, 선거 결과는 있으되 유권자의 뜻은 나타나지 않았던 선거였습니다. 지방자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적은데다가 중앙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이 선거과정에서 증폭되었기 때문입니다. 투표율도 52.4%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생긴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지역감정도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에서도 지역대결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자민련 후보가 강원도에서 도지사가 되고, 떨어지기는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시장선거에서 40% 가까이 득표를 하는 등 지역감정 극복의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따라서 제2회 동시지방선거에서는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의 하나였습니다.

또 지방선거 5개월 전 1997년 12월에 실시된 제15대 대통령선거 때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인 돈 덜 쓰는 선거가 관행으로 정착될 것인지 가늠해볼 있는 선거였습니다. 제15대 대선에서는 돈 선거가 주춤했습니다. TV토론이 도입되면서 불법 타락선거의 상징이던 대규모 군중동원 옥외집회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와는 다릅니다.

대통령 선거는 전국이 하나의 선거단위이고 유력한 후보가 한정돼 있어서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해 4개의 선거가 함께 실시되는 지방선거는 온 나라가 수천 개의 선거구로 나눠지고 후보만도 몇 만 명이 함께 움직입니다. 과연 지방선거에서도 돈 덜 쓰는 선거가 가능할지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6.4지방선거는 우리 정치의 후진적 행태인 지역대결 구도와 돈 선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누가 이길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치러졌습니다. 소수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것인가, 아니면 한나라당이 반전의 발판을 만들 것인가가 더 큰 관심이었습니다.

선거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공동여당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또 제2회 지방선거는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을 해체하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후보가 19.2%를 득표했지만 국민신당 지방선거 득표율이 2%에 머물고 광역의원 없이 기초단체장만 달랑 1명 당선되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6.1 지방선거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선거만 있고 지방은 없는 선거가 될 겁니다. 지방이나 균형발전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역에서 봉사하고 지역을 위해 고민하는 후보들보다는 당선가능성이나 당내 계파들의 역학관계로 공천이 결정될 겁니다. 선거공학으로만 접근하는 제8회 동시지방선거, 주민의 선택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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