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④] 어머니 태몽···”용이 용틀임 크게 하더니 그대로 품안으로”

백령도 용틀임바위. 인산 모친은 태몽을 이렇게 말했다. “아주 신령(神靈)스럽게 생긴 용(龍)이 하늘을 뚫고 불쑥 나타났습니다. 웬일인지 저는 놀라거나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용이 제 바로 앞 공중에서 용틀임을 크게 한 번 하더니 그대로 제 품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일이 없는 세상, 육신이 파괴되는 질병의 고통이 사라지는 세상, 암 환자 발생이 1%대로 낮춰지는 세상, 80대 노인들이 20대 청년들과 함께 일하며 낙원을 만드는 꿈. 이는 선생과 셋째 며느리로 인산 김일훈 문하에서 선생의 묘수, 비법을 전수받은 최은아 한의학박사의 바램이다. <아시아엔>은 최은아 박사가 쓴 <인산 김일훈 선생 전기 의황(醫皇)을 연재한다. 독자들의 애독과 건강 증진에 보탬 되길 바란다. <편집자>

김면섭은 김만득의 신념에 찬 얘기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따라서 김면섭은 자기대로 환갑의 나이가 가깝도록 쌓아온 자신의 공부라는 것이 고작해야 수박의 겉껍질을 꿰뚫을 만한 깊이도 못 된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동시에, 마주 앉은 김만득의 학문과 세상을 보는 통찰력은 가히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김면섭은 김만득의 예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한창 깊어졌을 무렵, 김면섭의 며느리가 저녁상을 받쳐 들고 사랑방으로 들어왔다. “소찬(素饌)입니다만 많이 드십시오.”

삼가는 몸놀림으로 얌전하게 밥상을 내려놓은 며느리가 두 사람 앞에 왼 무릎을 꿇고 양손을 짚으며 절을 한 뒤에 뒷걸음질로 물러서려 했을 때, 김면섭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며느리에게 물었다. “에미야, 혹시 네 몸에 지금 태기(胎氣)가 있더냐?”

며느리는 부끄러운 듯 얼굴에 홍조를 띠며 고개를 외로 돌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어제 저녁까지도 몰랐었는데, 지난밤에 하도 이상한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무래도 태중에 아이가 든 것 같습니다, 아버님.”

“오, 그래? 그렇다면 간밤에 네가 꾸었다는 그 꿈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꾸나.” 김면섭은 ‘과연 그렇구나!’ 하는 마음에서 며느리가 시아버지인 자신과 낯선 길손 앞에서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 얘기를 해보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며느리는 여전히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저는 어느 때 어느 장소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가운데, 넓은 들판에 서 있었습니다. 하늘에 오색이 영롱한 꽃구름이 아름답게 피어올라 어쩌면 구름 빛이 저리도 고울까 싶어 한동안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뇌성이 치더니, 아주 신령(神靈)스럽게 생긴 용(龍)이 하늘을 뚫고 불쑥 나타났습니다. 웬일인지 저는 놀라거나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용이 제 바로 앞 공중에서 용틀임을 크게 한 번 하더니 그대로 제 품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전 처음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며느리의 꿈 이야기를 듣는 김면섭은 줄곧 눈빛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고, 김만득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가락의 등 쪽으로 턱수염을 내쓸고 있었다.

김만득은 그 이튿날 아침 조반(朝飯)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김공, 소생이 당부 드린 말씀을 잊지 마시고 새겨두셨다가 새 손자를 보시거든 부디 잘 보살피십시오. 이미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로 태어날 것이므로 특별히 가르칠 것은 없겠으나, 국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이 나라에서 새 하늘을 열어갈라치면 불필요한 고초를 당할 수도 있으니, 소생은 그 점이 염려됩니다. 아무튼 소생은 이왕에 집을 떠나 예까지 왔으니, 함경도·평안도의 풍광(風光)을 좇아 유람도 하고 공부 경험도 더 쌓다가 내년 봄에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쯤이면 김공의 새 손자가 이 세상에 이미 와 있게 되겠군요.”

김만득은 괴나리봇짐을 등에 메고 초여름의 정갈한 햇빛과 온갖 수목이 자아내는 초록이 어우러지는 숲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김면섭이 보기에는 마치 땅을 딛지 않고 지표면에서 둥둥 떠가는 듯 가벼운 그의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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