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②] 당대 명재사 김만득이 인산 조부 김면섭을 찾아오다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일이 없는 세상, 육신이 파괴되는 질병의 고통이 사라지는 세상, 암 환자 발생이 1%대로 낮춰지는 세상, 80대 노인들이 20대 청년들과 함께 일하며 낙원을 만드는 꿈. 이는 선생과 셋째 며느리로 인산 김일훈 문하에서 선생의 묘수, 비법을 전수받은 최은아 한의학박사의 바램이다. <아시아엔>은 최은아 박사가 쓴 <인산 김일훈 선생 전기 의황(醫皇)을 연재한다. 독자들의 애독과 건강 증진에 보탬 되길 바란다. <편집자>
1908년 초여름, 천문·지리에 밝아 전국 팔도에 명성을 널리 떨치고 있는 당대 제일의 명재사(名才士) 김만득(金萬得)이 한양(漢陽)으로부터 불원천리 하고 김면섭의 집에까지 발걸음을 했던 것도 바로 그 수성(水星) 분야의 으뜸별이 이 땅을 향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던 까닭이었다. 향교의 전교를 맡아보고 있는 유학자이면서 향촌(鄕村)의 주민들이 병에 걸리면 이를 치료해 주고 약 처방을 하는 유의(儒醫)로서의 역할도 하는 김면섭은 외모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선비가 자기 집 문전에서 하루 저녁 유숙할 것을 청하자 일단 정중하고도 반가이 사랑방으로 맞아들였다.
딴에는, 학문에 상통함이 있다면 더불어 그것을 논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요, 말씨로 보아 기호(畿湖) 출신임을 추측케 해 타처(他處)의 세상 돌아가는 물정이라도 들어보겠다는 기대가 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선비의 예에 따라 맞절로써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외진 벽촌의 누추한 저희 집에 오셨으니, 편안히 쉬었다 가시도록 하시지요. 저는 김면섭이라 합니다.”
“지나가던 길손의 염치없는 부탁을 내치지 않으시고 이렇게 훈훈히 맞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한양에서 온 김만득이라고 합니다.”
집주인 김면섭은 그 순간 놀라움으로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길손께서는 바로 그 한양의 낙산(駱山)에 살면서 온 세상의 하늘과 땅, 인간세계의 운행을 두루 읽기로 소문난 성재(星齋) 선생이시란 말씀입니까? 이런…… 광영스러울 데가……! 오늘 저희 집에 참으로 귀한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그려.”
“보잘것없는 소생의 이름자를 미리 들으셨다니 민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리 말씀하시니 소생이 이 댁을 찾아온 연유를 말씀드리기가 더욱 수월해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소생은 달포 전 삼각산에 올라 천문을 보다가 북쪽 하늘에서 물 기운을 관장하는 별들 가운데 가장 큰 별이 땅을 향해 이동하는 것을 보고, 그 닿을 곳을 추적하여 예까지 왔습니다. 소생의 암우(暗愚)한 식견으로 볼 때, 필시 이 댁내에 인간세(人間世)의 고통을 말끔히 없이 해줄 귀한 인물이 곧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길손의 말을 들은 집주인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라며 입을 열었다. “인간세의 고통을 말끔히 없이 해줄 귀한 인물이라면……? 위로 나라님이 계셔서 만백성을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실 터인데, 감히 제 집안의 자손이 무엇이기에 이 세상의 고통을 물리친단 말씀이신지요? 행여 누가 들으면 제 집안에 앙화(殃禍)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길손은 집주인의 근심 어린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이 할 말을 해나갔다.
“지금 조정의 나라님이라고 해봐야 이미 기울어진 해와 같습니다. 왜놈들의 앞잡이를 자청한 매국노들에게 꼼짝 못하고 상투까지 잘린 나라님이니 백성을 위해 무엇인들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머지않아 삼천리금수강산은 왜놈들에게 난도질을 당할 비운에 처해 있습니다. 면암(勉庵, 崔益鉉) 선생 같은 분이 ‘내 상투를 자르려거든 차라리 내 목을 베어라!’라고 하면서 나서기는 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 쇠할 대로 쇠한 국운은 이제 그 명맥을 유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애통 절통할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어쩔 수 없이 우리 조선은 왜놈들에게 먹혀 어느 정도의 단련을 받은 연후에 어렵사리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조선조 5백년 역사의 끝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질 터인데, 새로운 시대란 단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해(四海) 인류의 세계를 통틀어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문명이 발현하는 시대를 말합니다. 작금에 천지의 운행은 이러한 조짐들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는데, 이제 이 댁에서 태어나게 될 아이가 그 새로운 시대의 주춧돌 역할을 할 대역(大役) 성인(聖人)인 것입니다. 소생의 짧은 견식으로는 그 아이가 지닌 능력과 행할 일들이 어떤 것인지 그 한 끄트머리라도 정확히 짚어낼 수 없으나, 그 아이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고 이후로도 어느 누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들을 해낼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한 달여의 긴 여정 끝에 오늘 이 댁에 당도하여 이 소식을 전해 드리니, 소생의 감개(感慨)를 이루 헤아릴 길 없을 따름입니다.”
집주인 김면섭은 천문·지리에 가히 신(神)과 통한다고 알려진 당대 제일의 재사 김만득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말 앞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성인이라면 공자(孔子)나 노자(老子)·맹자(孟子)·주문공(周文公) 같은 분들이나 석가모니 부처님, 또는 천주학에서 말하는 야소(耶蘇, 예수) 같은 분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분들과 같이 일컬어질 아이가 제 손자로 태어난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고 감당키 또한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김면섭의 뇌리에 며칠 전에 꾸었던 꿈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는 꿈속에서 끝 간 데 없이 맑고 푸른 하늘 저 끝의 한 작은 점이 점점 자신에게로 다가옴에 따라 그것이 오색찬란한 깃을 펄럭이며 날고 있는 봉황(鳳凰)임을 알아보았다. 물론 생시에 봉황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오색이 영롱한 깃털과 한쪽 날개만으로도 자신의 집 전체를 뒤덮고 남을 만한 크기, 천지간을 가득 메울 듯하면서도 듣는 이로 하여금 한없는 열락(悅樂)의 환희를 느끼게 하는 청아한 울음소리 때문에 그것이 봉황인 줄 알았던 것이다.
김면섭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가슴께에 합장하였다가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배례(拜禮)로 봉황을 맞았다. 봉황은 김면섭의 집 위를 크게 세 바퀴 돌더니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빛나는 광채와 함께 그 집 앞마당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