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9일 죽염·유황오리 개발 김일훈 선생 30주기···”코로나시대 인산 유업 계승을”
“바이러스가 아무리 변종으로 바뀌어도 상관없고, 사이토카인폭풍 같은 것을 쉽게 제어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난담반’이 환자의 인체 내 면역 능력을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돕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 난담반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제가 운영하는 인산한의원을 통해 간암과 위암, 뼈암, 난소암, 방광암, 갑상선암, 강직성척추염, 크론병, 전립선염, 중이염, 교통사고 뇌손상, 알러지 피부난치병 등 여러 불치병 환자들에게 핵심치료제로 적용하며 이미 탁월한 효과를 입증한 바 있었기에 코로나-19가 닥쳤을 때 바로 이거다! 무릎을 탁 친 거였죠.”
최은아 인산한의원 대표이사는 지난 1년 동안 인산죽염(주) 직원들과 함께 국내외 코로나 확진자 1000명에게 ‘난담반’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캠페인을 추진하는 등 여러 노력을 펼쳐왔다.
또 다른 한편으론 ‘난담반’을 복용한 뒤 완치된 국내외 사례들을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로 알렸다. 최 대표는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던 인산 김일훈 선생의 생애 업적과 인류학적 유산을 지구촌 곳곳으로 널리 알리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난담반’ 제품인 ‘면역천재’에 대한 구입 문의가 점차 늘고 있고,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라 급증하고 있는 국내 재택 치료자들로부터도 많은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그는 “‘난담반 효능’에 대한 국내외 임상 사례는 더욱 많이 쌓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는 5월이면 최 대표의 시아버지이자 죽염을 연구 개발한 인산 김일훈 선생의 30주기가 된다. 코로나 창궐로 나라 안팎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이 때 인산가의 역할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인산 김일훈 선생은?
김일훈(金一勳, 1909년 음력 3월 25일~1992년 양력 5월 19일)은 한국의 한의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성리학자, 철학자, 정치인, 약초 연구가다.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한의학자이자 죽염과 유황오리의 최초 발명자이다. 유황과 다슬기의 효능을 연구하였고, 홍화씨의 근골 강화 약성을 발견하여 보급시켰으며 암치료제 오핵단과 사리장을 개발하였다. 목에 좋은 무엿과 폐에 좋은 호두기름 제조법을 개발하여 보급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항일무장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였고 이후 산지에서 약초를 캐며 약초 연구를 하였다. 정치활동으로는 제1공화국 당시 이승만 측근으로 자유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정계 은퇴 이후에는 다시 약초 연구와 진료, 강연 활동을 했으며 무료 진료로 명성을 날렸다. 성리학으로는 노론 화서학파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호는 인산(仁山)이다.
인산 김일훈은 1909년(융희 3년) 음력 3월 25일 함경남도 홍원군 용운면 연흥리 유의(儒醫)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유학자였던 아버지 뜻에 의해 화서학파의 스승을 찾아가 성리학과 글을 배웠다. 어느 날 비 개인 하늘의 오색 무지개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 이때부터 무료 진료 활동을 펼쳤다.
1925년 17세에 조선인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본인 학생들을 때려 눕힌 뒤 체포를 피해 만주로 피신,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때 만주 의병장인 변창호의 모아산 부대원으로 항일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부로 송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탈옥하였다.
탈옥 뒤 광복 직전까지 전국 산지를 다니며 약초를 연구하였다. 또한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20여년 생활하면서 자연물의 약리작용을 간파하였고, 러시아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곳곳에서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가 없이 살려내 신의(神醫)로 불리었다.
해방 후에는 정치활동에 참여하여 이승만의 측근으로 자유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나 1952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뒤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내려가 약초 연구와 진료 활동, 강연 활동에 전념하였다. 타계하기까지 돈 받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여 ‘가난한 민초들의 의왕’으로 존경받았다. 그밖에 민간 죽염의 제조기술을 개발하여 확신시켰으며 유황과 다슬기의 효능을 연구하였으며, 다슬기의 색이 인간의 간의 색과 유사하여 간에 좋은 점을 발견해냈다. 그는 또한 유황오리 요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최후 최대의 발명품으로 사리장을 제조하여 암치료에 응용하였다.
저서로는 <우주와 신약>(宇宙와 神藥), <구세신방>(救世神方), <신약본초>(神藥本草) 등의 의서와, 의론(醫論)과 시사담론을 수록한 어록집 등을 남겼고, 서예작품이 몇 점 전한다. 만년에는 원고 집필과 강연 활동, 조선일보 등 언론사 초청 좌담회 등에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