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③] “나라 다스리는 것이나 병 다스리는 것은 같은 이치”

수성. “수성(水星)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 이 댁 자손은 인간세계의 병고(病苦)를 다스리는 대업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나 병을 다스리는 것은 이치가 같은 한 가지 일로서, 뛰어난 의원이 이를 능히 해내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본문 가운데서)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일이 없는 세상, 육신이 파괴되는 질병의 고통이 사라지는 세상, 암 환자 발생이 1%대로 낮춰지는 세상, 80대 노인들이 20대 청년들과 함께 일하며 낙원을 만드는 꿈. 이는 선생과 셋째 며느리로 인산 김일훈 문하에서 선생의 묘수, 비법을 전수받은 최은아 한의학박사의 바램이다. <아시아엔>은 최은아 박사가 쓴 <인산 김일훈 선생 전기 의황(醫皇)을 연재한다. 독자들의 애독과 건강 증진에 보탬 되길 바란다. <편집자>

김면섭은 꿈을 깨고 나서도 한동안 꿈속에서의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다. ‘허허, 기이한 꿈이로다. 이건 필시 우리 집안에 새 생명이 잉태되면서 꿈으로 현현(顯現)한 태몽임에 틀림없을 터인데……. 예로부터 봉황은 성천자(聖天子)가 인간세계에 내려온다는 징조를 보일 때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며늘아기에게 곧 태기가 있겠구먼.’

김면섭은 그 꿈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가슴속에 고이 접어두고 있던 터였다. 일찍이 자신의 10대조인 사지공(四知公)께서 성종 23년에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급제한 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이조(吏曹) 좌랑(佐郞) 등을 역임한 이래 큰 벼슬에 나가지 못했던 가계(家系)에 비로소 큰 인물이 나려나 보다 하는 정도의 기대가 허툰 꿈 얘기를 입 밖에 냈다가 사라질 것을 저어했기 때문이었다.

“금일 성재 선생께서 저의 누옥(陋屋)에 왕림하시어 하시는 말씀의 뜻을 헤아리기가 실로 난감합니다. 기왕에 꺼내신 말씀이니, 좀 더 소상히 앞으로 있을 일을 말씀해 주시면 대비(對備)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김면섭은 한껏 자신을 낮추는 태도로 말했다.

김만득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말로써 나타낼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입안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양의 집에서 길을 떠난 이래 줄곧 그의 가슴을 억눌러 온 강박감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그러함에도 이제 비로소 태어날 아이의 태를 묻을 자리에 와 있으니, 새로이 자신의 넋 안에 괴어 오는 것은 없을까 하여 눈을 감고 천기(天氣)의 실마리를 더듬어 보았다.

‘아, 나의 작음으로 어찌 이 큰 역사(役事)의 비밀을 예언하리오? 내 공부가 천박하고 내 눈 어두운 것이 실로 한탄스럽구나!’

김만득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스스로의 부족함 앞에서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식경이 지난 연후에 김만득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짐작컨대 수성(水星)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 이 댁 자손은 인간세계의 병고(病苦)를 다스리는 대업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나 병을 다스리는 것은 이치가 같은 한 가지 일로서, 뛰어난 의원이 이를 능히 해내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다스리는’ 일에 있다 할 것인즉, 선비들 가운데 높은 지위를 얻어 나라에 든 병을 다스리고자 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의원이라는 직분에 몸을 숨기고 의술을 베풀었던 예를 우리는 무수히 보아 오지 않았습니까?

이는 의술을 베풀어 백성들을 구제하는 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공에 버금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 댁에 오는 아이는 한 나라의 다스림에 견줄 의술이 아니라 온 천하를 두루 다스리는 하늘의 다스림과 견줄 바 되기에 ‘성인’이라 일컬었던 것입니다. 소생이 보았던 수성계의 큰 별이 땅으로 임했다는 것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천지간의 운행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래한 일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이미 땅 기운이 쇠할 대로 쇠해지고, 그 쇠함을 더욱 부채질할 독(毒) 기운이 세상에 미만(彌滿)해 있다는 증좌(證左)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쇠약해진 땅 기운과 미만한 독 기운에 시달리는 뭇 인간들에게 새로운 생명력과 활력을 되찾아주고, 천지 운행의 요체(要諦)와 원리를 널리 알려 다시는 병고(病苦)에 침노(侵擄)당하지 않는 지식을 갖게 하려는 하늘의 뜻에 따라 수성계의 큰 별이 강림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세계는 수백 년 전에 서양에서 시작된 기계 문명의 진보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문명은 우주의 원리에 조화(調和)를 이루어 만 인류의 자연스러운 생존을 도모하기보다는, 도리어 우주의 원리를 깨뜨리고 그에 도전함으로써 인간세계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땅이 길러내는 것들로 먹고 입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땅을 헤집어 지기(地氣)의 한 요소가 되는 갖가지 물질들을 캐내어 그것으로 문명을 유지하려 하니 동티가 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땅속에서 끄집어낸 것들로 불을 일으키니 그것은 곧 독성 기운으로 변하여 세상을 병들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나 금기(金氣)에 의한 살기(殺氣)를 띠고 화생(化生)한 서방의 무리들인지라 기계 문명을 이용하여 세상을 파괴하고 인간을 살해하는 각종 무기를 만들어 침략을 일삼고 있으며, 그 여파로 본래 목기(木氣)의 생기(生氣)를 따르게 되어 있는 왜놈들까지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지금 저렇게 날뛰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백 년 안에 인류는 예기치 못한 각종 병독에 점염(點染)되어 쓰러지게 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땅이 꺼져 물속에 잠기고 하늘에 구멍이 나는 대재앙 앞에 속수무책으로 황폐해질 것입니다.

이제 수성계의 큰 별이 이 땅에 보내어짐은 그에 대한 하늘의 대비(對備)인 고로, 김공께서는 부디 새로이 얻으시는 자손이 우주의 원리 중 한 가지라도 더 이 세상에 알려 뭇 인류로 하여금 올바른 정신과 활기찬 육신으로 천명(天命)을 다하는 복락을 누리게 할 수 있도록, 그 어린 동안의 보살핌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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