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82] ‘지방’ 없는 지방선거

1991년 3월 26일 광역의원 선거날 유권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구 서구 제3선거구 제3투표소인 중리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 줄지어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매일신문DB>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집니다. 동시지방선거라 부르는 건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원들을 한꺼번에 뽑기 때문입니다. 시·도지사를 뽑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시·도의원을 뽑는 광역자치의회 선거, 시장·군수·자치구청장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 시·군·자치구의원을 뽑는 기초자치의회 선거, 그리고 시·도교육감을 뽑는 교육감 선거가 치러집니다. <아시아엔>은 ‘손혁재의 대선 길목’에 이어 6.2 지방선거의 의미와 전망 등을 짚어봅니다. <편집자>

지방선거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지방’은 없고. ‘선거’만 있다는 것입니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현장’인 지방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는 주민의 ‘선택’은 사라지고, 중앙정치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시민의 ‘심판’만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로 작용해 왔습니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정치 차원의 정책대결이 아니라 중앙정치 차원의 정책대결이 벌어집니다. 지방자치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과 대립도 중앙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었을 뿐 지방자치의 활성화 등 지방자치의 본질을 둘러싼 대립은 별로 없었습니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는 정부 수립 때부터 제헌헌법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 수준이 반영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방자치는 밑으로부터의 요구나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아니라 지방자치제가 민주주의의 당연한 요건이라는 인식이 근거가 되어 사회 내부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 없이 도입되었습니다.

지방선거 부활된 1991년 3월 26일 대구의 <매일신문> 보도. 당시 이 신문은 석간이어서 오전 상황만 기사에 담겨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이해에 따라 지방자치제도는 흔들렸고, 마침내 5.16으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건 30년 만인 1991년이었습니다. 주민의 직접 선거로 1991년 3월 26일 기초자치의회 의원 4277명을, 6월 20일 광역자치의회 의원 866명을 선출했고 7월 1일 온 나라에서 지방의회가 일제히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짜리 지방자치였습니다. 기초자치단체의 장(시장·군수·구청장)과 광역자치단체의 장(시·도지사)은 여전히 중앙 정부가 임명하고 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부담을 느껴 법정기간 내 선거일을 공고하지 않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체장까지 주민이 뽑게 된 건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6월 27일 치른 제1회 동시지방선거 때부터입니다. 광역 자치단체장 15명, 기초자치단체장 230명, 기초의회 의원 4645명, 광역의회 의원 866명을 선출했습니다. 유권자 수는 28,083,024명, 투표자 수는 16,533,934명, 투표율은 58.9%였습니다.

이로써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지만 지방자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버렸습니다. 제1회 동시지방선거에서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와 1988년 제13대 총선 때 나타난 민자당(영남)-민주당(호남)-자민련(충청)의 지역주의 정당구조가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지역주의를 기초로 한 중앙정치 구도가 지방자치를 왜곡시키는 건 지금도 여전합니다.

기초자치단체장을 보면 부산 지역의 88%가 민자당, 광주 100% 전남 92% 전북 93%가 민주당, 충남 100% 대전 80%가 자민련 소속이었습니다. 광역 의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는 정당공천제가 아니었던 기초자치의회 의원도 비슷한 비율이었을 겁니다. 지방정치인들이 중앙정치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정권을 5년 만에 되찾았지만 국회에서는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에게 밀리는 상황입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또는 허락 없이는 국정운영이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협상과 타협, 양보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지방선거에서 크게 이겨 시민의 지지를 다시 확인하면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은 넘겨주지만 국회의 다수당 지위로 정국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래도 2년 뒤 제22대 총선과 5년 뒤 제21대 대선을 기약하려면 대선 패배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재정비를 해야 합니다. 그 계기가 6.1 지방선거입니다. 이래저래 이번 선거도 ‘지방’이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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