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사진기자 고명진의 민주화 현장기록 ‘그날 그 거리’


사진기자 고명진은 1987년 6월10일 오후 서울시경~신세계백화점~한국은행~서울역 일대를 미친 듯이 내달렸다.?오늘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서막을 올린 ‘6월항쟁’ 첫날, 그는 방독면을 눌러쓴 채 카메라를 둘러매고 역사를?기록하고 있었다. 한국일보 기자였던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시위대와 진압경찰은 밀고당기기를 계속했다. 결국 한 소대의 전경들이 시위대에 의해 무장이 해제됐다. 6월10일 저녁 7시쯤 집회해산을 위해 한국은행 앞을 지나던 경찰 1개 소대병력이 시위대에게 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미 막다른 골목에 몰렸고, 모든 것을 시위대에 뺏겼다. 전경들에게 남은 것은 보호막이 방패 하나뿐이었다.”(1987. 6. 10 한국은행 앞)

고명진은 그해 6월26일, AP통신이 ‘20세기 100대 사진’으로 선정한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아! 나의 조국’이라는, 그럴 듯한 제목까지 달았다. 당시 한국일보에 사진과 함께 실린 사진설명은 이렇다. “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쏘며 6·26평화대행진을 저지하자 한 시민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경찰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고명진은 2010년 5월 펴낸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에서?당시?상황을 이렇게 썼다.

“순간, 175cm 정도의 다소 마른 청년이 윗옷을 벗어던진 채 앞으로 뛰어나왔다. 마스크를 하고 태극기를 든 두명의 청년 역시도 웃통을 드러낸 그 청년이 어디서 뛰어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군중들은 순간 호흡을 가다듬고 청년을 지켜보았다. 청년은 무어라 외치며 달려나왔다. 파인더에 눈이 고정돼 있던 나는 셔터를 눌렀다. 그것은 불과 5초의 순간이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불과 50m 앞에 있던 전투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쏘며 진영을 좁혀오고 있었다. 군중들은 ‘4·13 호헌철폐, 직전제 쟁취,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물러서지 않았다. (중략) 1987년 6월26일 부산 문현동 로터리에서 나는 취재 완장을 차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갑이 지난 고명진은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빈다. 지난 5월24일, 2년 가까이 혼신의 힘을 쏟아 일군 영월기자미디어박물관을 방문하면, 그의 열정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는 신일고 신문반에서 본격적으로 사진공부에 빠져든 이후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의 40년 ‘사진인생’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돼있다.
1부 진리의 상아탑에서, 2부 그날 그 거리, 3부 시대의 얼굴, 4부 진실을 알리다, 5부 잊지 못할 순간 등 자못 서정적인 제목들로 비친다. 하지만?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분노와?비참한 현장과?함께 지금은 사라져가는 아쉬움을 던져주는 치열한 현장을 빼곡히 기록하고 있다. (펴낸곳 한국방송출판, 02-3153-4407, www.kbsbook.com)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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