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혜미의 글로벌 TIP③] 외국어 잘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능력

모든 관계는 경청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뉴질랜드에 살 때 어느 날 거래하던 현지은행에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은행 고객센터 매니저라고 소개한 그가 내게 전화를 한 이유는 담당직원에 대한 고객만족도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내 담당직원은 매우 공손하게 인사를 잘하는 한국인이었는데 업무 처리는 그다지 매끄럽지 못해 내심 불만족스러워 나는 그 은행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겨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매니저가 직접 내게 전화 해서 그 직원과의 소통에 대해 세세한 질문과 함께 그의 업무 능력을 평가해 달라며 정중하면서도 알아듣기 쉬운 영어로 아주 천천히 물었다. 나는 “그 직원은 매우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기는 한데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소통능력에 대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며 내 심정을 얘기해 주었다.

맨 처음 그 은행을 방문했을 때 노랑머리의 리셉션 직원이 반기면서 어느 나라 말이 소통하기 편하냐고 내게 물었었다. 그 이유는 언어 때문에 의사 전달에 대한 불편함을 겪을까봐 배려해서 모국어를 구사하는 직원을 담당자로 연결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담당한 그 한국 직원은 내가 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은행시스템을 운운하며 본인에게 편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그 상황을 경험하면서 소통이라는 것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통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또 그것을 공감하고 또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며 그것은 동일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공감과 소통의 능력은 어릴 때부터 가정과 사회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대하면서 여러 입장과 상황에 처해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와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가정에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부모가 자녀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서 입장 차이를 좁히는 수고를 통해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충분히 자녀에게 경험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를 생략하고 단지 자녀에게 군대식으로 지시하고 따를 것을 요구하며 키운다면 자녀는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채 사회에 나가게 된다.

진정한 소통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부재는 대인관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갑’과 ‘을’의 관계 이상의 그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직장에서 리더가 될 수 없으며 서비스 업종에서는 치명적인 핸디캡으로 작용하게 된다.

외국어 점수가 아무리 상위권이라 하더라도 대인관계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문화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에선 더욱 소통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혈연, 학연, 지연, 종교중심으로 대인관계를 연결해 오던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 역시 다양한 대인관계는 물론 소통능력 역시 취약하다. 해외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면서 어떻게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글로벌 시대에 다국적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더욱 많아질 상황에서 가정에서 대인관계 기회와 기술을 어떻게 제공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다.

매일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서 틀에 박힌 대화를 하며 새로운 정보만 얻으려는 목적으로 대화하면서 사람들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없다면 자녀들 역시 소통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또 부모 스스로가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는 태도라면 자녀 또한 소통능력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다. 부모가 아이들의 친구 그룹을 직접 만들어주기보다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스스로 친구를 만드는 훈련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들 속에서 스스로 소통기술을 터득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특히 해외에 살게 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다면 다양한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부모는 해외에서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혹은 다양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노력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회성과 자연스런 대인관계 그리고 소통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능력은 아이들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패턴의 고정된 사고를 하고 있는 부모 밑에서 대부분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그들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세상을 탓할 일만이 아니다.

TIP 10

-소통을 잘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주고 또 존중해주자.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중간에 끊지 말고 결론을 이야기할 때까지 경청하자.

-특히 자녀와 대화할 때 주제가 곁가지로 가지 않도록 핵심을 정리하면서 얘기하자.

-아이들에게 말할 때 일방적인 명령을 줄이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소통하도록 하자

-아이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예화로 세부적인 설명을 충분히 하자.

-상대방 의도가 불분명할 때는 정중하고 정확하게 질문을 하여 명료화된 답변을 듣자.

-인터넷에 댓글을 달 때에도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의사를 정리하여 표현하자.

-나와 친한 사람들이 내 감정을 다 이해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자. 대신 명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타인과의 소통에 걸림돌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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