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이 50년 애지중지 야구용품 버리고 나니…

이만수 감독이 라오스 어린이들을 감싸 안아주고 있다

2021년 가을, 이사를 하기 위해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방 한 칸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야구 물품들이 새삼스럽게 다시 눈에 들어왔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생활 동안 모아 둔 야구공, 글러브, 유니폼, 각종 상패와 상장, 기사 스크랩 등이 차고 넘쳤다. 선수 시절 은퇴 후에 ‘이만수 야구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꾼 적이 있다. 혼자만의 이 계획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갈 때마저 야구용품을 일일이 다 챙겨 갔을 정도였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52년 동안 야구를 했다. 52년 동안 오로지 한길을 달려오면서 기념될 만한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사를 할 때마다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물건들을 이번에 다 정리하게 되었다. 이사할 때마다 야구용품을 애지중지하며 혹시나 분실하거나 파손되지 않도록 이삿짐센터 직원분에게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를 지탱해주고 내 전부라고 생각했던 이것들이 이제야 부질없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왜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저장 강박’을 이제 스스로 치유할 용기가 생겼다. 그들은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을 ‘확장된 자아’(Extended Self)로 보고 타인을 향한 과시의 목적보다는 내면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생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아마도 수많은 야구용품은 내 젊은 시절의 정체성을 지키고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4분의 3 이상이 넘는 야구용품을 정리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 야구용품에 집착하고 아꼈는지를 알기에 깜짝 놀란다.

평생 모은 야구용품들은 내 분신과 같은 것들이다. 50년 넘는 야구 인생에서 그라운드와 밖에서 남모르게 흘렸던 눈물, 좌절, 땀, 기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문득 과감하게 이것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며칠 동안 고민했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사실 손이 떨릴 정도였다. 이것들을 버리고 과연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내적 갈등은 오래 지속되었다. 야구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내가 야구를 통해 얻었던 명성, 인기 등 화려했던 내 과거를 잊고 싶지 않은 내 욕심을 쉬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야구용품을 버릴 때가 온 것이다. 끝까지 움켜쥐려고 했던 것들의 덧없음을 이제 알 나이가 된 것 같다. 비우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 물론 단순한 차원에서는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그러나 그것보다 비우고 나니 내 마음에 다른 무엇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덩그러니 비워진 방을 쳐다보며 문득 또다시 달려가서 버려진 것들을 주워 담아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걸 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참 미련스럽다.

라오스와 베트남에 야구전파를 하며 느끼는 야구와 예전에 내가 선수와 유명 팀 코치와 감독으로 경험한 야구는 다르다. ‘야구’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남은 인생에서 내가 야구를 좇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야구와 함께 행복해지기를 선택했다. 내 무모한 도전을 따라올 후배들을 위해 탄탄한 땅 위에 균형 잡힌 주춧돌을 꼭 놓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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