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45] 공약···’다다익선’ No 진정성·실천력 담긴 ‘소수정예’ Yes
1971년 오늘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가 연두회견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후보는 소련 등 동유럽 나라들과의 외교전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정치학자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 수 없다’ 등의 구호대결에 머물던 선거가 공약대결로 바뀐 게 제7대 대통령선거였다고 평가합니다.
공약대결을 선도한 이는 바로 김대중 신민당 후보입니다. 대선은 1971년 4월이었는데 김 후보는 1970년 9월에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김 후보는 선거 열기를 높이려고 1970년 10월부터 지방유세를 다녔습니다. 민주공화당은 선거열기가 뜨거워지는 걸 막으려고 선거 직전인 1971년 3월에야 박정희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지방유세에서 단순히 지지를 호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많은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김 후보의 공약에는 파격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향토예비군 폐지 공약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창설 직후의 향토예비군은 독재정권의 관제사업 강제동원 등 물의를 많이 빚어서 향토예비군제도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었습니다.
김대중 후보의 공약 가운데 ‘미-일-중-소 4대강국에 의한 전쟁억제 보장요구’ 공약과 ‘남북한 사이의 단계적 비정치적 접촉 시도’ 공약은 향토예비군폐지 공약과 더불어 그에게 ‘용공’이라는 혐의를 덧씌워 버렸습니다. 이밖에도 ‘노사공동위원회 설치’ 공약과 수출주도산업화 정책을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으로 바꾸자는 ‘대중경제론’ 공약 등을 제시했습니다.
김대중 후보의 공약이 시민의 관심을 끌자 박정희 후보도 안보 문제와 향토예비군폐지 문제, 경제정책 문제 등을 놓고 김 후보와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번 대선도 이재명 후보가 많은 정책을 제시하면서 윤석열 후보와 정책 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공약은 힘이 셉니다. 아니, 선거가 힘이 세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릅니다.
정책공방의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한줄공약입니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은 ‘이대남’을 겨냥한 맞춤형 공약이 지지율을 반등시켰다고 긍정적 평가입니다. 그러나 이 공약에 불편한 시민들도 많습니다. “왜 페미니즘을 공격 대상으로 삼느냐”, “2030 남성이 모두 안티페미니스트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병사월급 200만원’은 원래 이재명 후보가 먼저 약속했습니다. 뒤이어 윤석열 후보가 ‘병사월급 200만원’ 한줄공약을 SNS에 올리자 안철수 후보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며 두 후보를 묶어 ‘쌍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소극적이던 윤 후보께서 병사월급 200만원 공약을 수용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며 재차 약속했습니다.
이 공약을 놓고 원조 논란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병사월급 200만원’ 한줄공약이 호응을 얻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후보 공약을 베껴쓰기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공약 침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언론들은 이 후보와 윤 후보의 공약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정책차별성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정책에 차별성이 있어야 시민들의 판단과 선택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 차별성을 가질 순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성폭력 처벌 강화’ 공약에서 차별성을 요구하는 건 무리입니다. 처벌의 수준이나 예방 방법 등에서 차이가 드러날 수는 있겠지만 성폭력 처벌 강화는 모든 후보들이 공통으로 내걸 수밖에 없는 정책입니다.
다만 진정성 있는 공약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허황된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실천의지가 강한지, 우선순위는 어떤지, 재원이 필요한 경우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후보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내보여야 합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간의 TV 정책토론을 시작으로 다른 후보들도 함께 하는 다양한 TV 토론이 기대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