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44] ‘진짜 민심’과 여론조사

2002년 11월 15일 민주당 노무현-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하기로 전격 합의한 후 소줏잔으로 러브샷을 하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노 후보가 크게 열세였다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여론조사 결과 노 후보로 단일화가 확정됐다.

선거가 끝나면 ‘뜻밖의 결과’라는 말들이 자주 나옵니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예측이 틀렸을 때, 왜 틀렸는지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뜻밖의 결과라는 건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이나 전망이 틀린 것입니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뜻밖의 결과가 나온 대표적인 선거는 2년 전 치른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2020)입니다. 문재인 정부 3년차에 치러져 중간평가적 성격을 지닌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의 3분의 2인 180석을 획득했습니다. 모든 분석과 예상을 깬 ’뜻밖의 결과‘였습니다. 180석 가능성을 언급했던 유시민 전 의원은 호된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20대 총선(2016)도 ‘뜻밖의 결과’였습니다.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넘나드는 좋은 성적을 받으리라 전망했습니다. 정당들의 분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130석으로 131석의 더불어민주당에 뒤져 2당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천개입 혐의로 재판을 받아 유죄로 확정되었습니다.

20대 총선 당시 언론과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습니다. 언론들은 새누리당이 최대 150석, 최소 130석을 획득하리라 전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많아 봐야 120석, 최악의 경우 80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민주당에서 갈라선 안철수 대표가 만든 국민의당은 최대 40석 최소 20석, 정의당은 10석 안팎을 획득하리라 보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전문가들도, 언론도, 정당도 예측을 잘 못할까요?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이겼으면 하는 ‘희망 섞인 관측’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객관적이고 정확할 것이라고 믿는 여론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20대 총선 직전의 여론조사를 보면 새누리당 지지율이 압도적인 1위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이 갈라져 나가는 바람에 지지율이 매우 낮았습니다. 10% 초반으로 새누리당 지지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민심은 움직이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움직이는 민심의 최종 선택이 여론조사와 달랐던 것입니다.

여론조사를 불신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조사 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여론조사 기법도 많이 향상되었고, 여론조사기관들도 객관성을 지키려고 애쓰기 때문에 결과 자체가 조작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설문항목이나 조사 방식, 응답률 등의 차이 때문에 여론조사기관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뿐입니다.

여론조사기법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여론조사가 종종 선거 결과를 잘못 예측하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민주당 후보를 꺾었던 2016년 대선이었습니다.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58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여론조사들은 거의 대부분 힐러리 후보의 당선을 점쳤던 것입니다.

여론조사는 조사 당시의 민심을 헤아리는 데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승자편승(bandwagon), 열세자효과(underdog effect),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등 여론조사 결과로 시민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지만 여론조사가 최종 결과를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사회학자와 언론학자들이 “poll은 vote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론조사는 제대로 읽으면 후보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언론들도 지지율 순위를 보도의 중심에 놓는 경마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정책 보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중요한 건 지지율이 아니라 후보의 비전과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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