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54] 5년 전 6.17% 득표 심상정 후보에 거는 기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현 선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선거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당 선대위도 일괄 사퇴를 선언했고, 심 후보는 이틀째 시민 앞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 후보나 정의당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진보정치의 우울한 현실과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상정 후보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계속 정체된 낮은 지지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 후보는 5년 전 제19대 대선에서 6.17%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2~3%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더구나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에게도 지지율이 뒤지는 것으로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심상정 후보 지지율이 올라가지 못하는 요인으로는 선거지형이 정의당에게 불리하다는 외부 조건을 꼽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벌어지는 네거티브 난타전이 심해지면서 심 후보가 언론과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이건 안철수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에게도 마찬가지로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자질과 능력 부족, 거친 태도와 막말에 실망해 윤 후보를 떠난 민심이 안 후보에게로 쏠린 것입니다. 지지기반이 윤 후보와 전혀 달라서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이 심 후보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심 후보 지지율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심상정 후보가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진보정치의 간판 선수였던 심 후보의 출마는 세 번째입니다. 제18대 대선에서는 후보로 선출됐지만 문재인 지지를 밝히며 사퇴했습니다. 제19대 대선에서는 5위에 머물렀습니다. 세 번째인 건 안철수 후보도 마찬가지인데, 안 후보와는 달리 왜 심 후보에게만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바로 이 지점에 정의당의 문제와 고민이 있습니다. 그 동안 대선은 물론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정책 이슈를 선도했습니다. 보편적 복지의 상징인 무상급식과 시민참여의 상징인 주민참여예산제는 진보정당이 제기하고 줄기차게 주장해 도입된 빛나는 성과입니다. 기초노령연금, 아동수당, 상가임대차보호법, 선거연령 18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책 경쟁을 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심상정 후보가 정책이슈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대안 제시를 못하면 지지기반이나 당세가 역한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의 존재감이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의당과 심 후보가 시대정신을 반영한 정책과 비전으로 대선의 정책 이슈를 끌어가면 좋겠습니다.
꼭 한달전 민주화 원로들이 대선을 혼탁한 정치 공방 대신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활발한 공론의 장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들은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어야 할 주요 의제도 제시했습니다. 기후위기 극복, 미국·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 미래세대와의 동행, 지방분권화, 일본 자민당 정부와의 군사협력 요구 거절 등입니다.
표 계산에 능한 정당들은 이런 이슈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정의당이기에, 심상정 후보이기에 시민들을 설득하기는 껄끄럽지만 꼭 필요한 이런 이슈들을 제기하고 시민들을 향해 외칠 수 있습니다. 불평등과 빈곤, 젠더, 인권 등 다른 후보들이 정책 제시를 못하거나 구호에 그쳐도 심 후보는 얼마든지 대안 제시를 할 능력이 있습니다.
선거 국면은 진보정치의 이념과 비전을 시민들에게 합법적으로 알릴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보수양당정치가 황폐해지고 시민의 정치불신은 강한 현실입니다. 진보정치의 대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 척박한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진보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면 심상정 후보가 심기일전해 이른 시일에 선거 활동을 재개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