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56] 윤석열 공약, ‘단견’에 ‘위험’하다는 우려도
한 후보가 선거유세를 하면서 “저를 당선시켜 주시면 이 고장의 숙원인 다리를 놓아드리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유권자들이 의아해서 후보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강도 없는데 어디에다 다리를 놓는단 말이죠?” 그러자 후보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강부터 먼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선거공약이 얼마나 허망한 약속인가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 이야기는 실제로 미국에서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하여 장밋빛 화려한 약속을 남발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오죽하면 공약(公約)을 ‘빌 공(空)’자로 바꾸어 공약(空約)이라고 부르겠습니까?
아마도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한 공약이 제대로 다 실천되었다면 지구상에는 못 사는 나라는 벌써 없어졌을 겁니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할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화려하고 멋진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들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후벼파듯 제기하는 문제점들이 중점적으로 부각되면서 비호감 이미지만 도드라지던 선거판에 정책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지리한 ‘누가 더 나쁜가’ 네거티브 경쟁은 여전하지만 정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커지고 보도 양이 많아진 건 다행입니다. 다만 많은 보도가 후보들의 입에서 나온 정책과 공약 중계 수준에 그치는 건 아쉽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세계5강의 경제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신경제 비전 선포식’을 발표했습니다. 4대(과학기술, 산업, 교육, 국토) 대전환을 통해 세계5강·소득 5만달러·주가 5천을 이루겠다는 공약입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선거용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언론의 지적과 TV 토론을 통해 깐깐하게 따져 물어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국정운영의 기본 얼개를 보여준 반면 윤석열 후보는 밑도 끝도 없이 SNS를 이용해 공약을 툭 던집니다. 예컨대 윤 후보는 며칠 전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줄공약을 올렸습니다. 경선 때 말한 ‘양성평등가족부’로의 개편 공약을 아무 해명 없이 바꾼 겁니다. 실언을 하거나 식견 부족이 드러날까 봐 길게 쓰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은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경선 공약도 말장난 수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영어 명칭이 양성평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 것인데,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라”는 고압적인 답변도 어이없습니다.
여가부 폐지 주장은 추락한 청년층 지지율, 특히 ’이대남‘으로 불리는 남성 청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속셈에서 나왔습니다. 일부 남성 청년들은 박수를 칠지 몰라도, 여가부 폐지가 시급한 과제는 아닙니다. 취업, 내집마련, 결혼, 출생과 육아 등 청년층들이 겪는 고통을 줄일 공약의 제시가 청년층 지지율 확보에 더 효과적일 겁니다.
생각 없는 행동, 고압적 자세, 그칠 줄 모르는 막말 등을 지적받던 윤석열 후보가 정책과 공약을 담은 메시지를 내놓는 건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SNS를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공약을 밝히는 등 시민에게 다가가는 형식도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바뀐 형식에 담긴 내용이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라면 등을 돌린 민심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한국청년들이 중국을 혐오한다”는 근거 없는 발언, ’멸공‘ 챌린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등 외교와 안보를 흔들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발언에 윤석열 후보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일부 수구적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정책과 공약은 ’다리를 놓을 강부터 만들겠다‘는 공약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위험한 공약(空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