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72] 박근혜 사면을 바라보는 시각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복권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통합과 화합에 방점을 찍은 이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박근혜의 사과와 반성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사면에 최소한의 국민적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비판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면은 헌법으로 보장된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어려운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박근혜의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화합을 위해 사면권자가 고민하고 결단해야 하는 정치적 현실과 국정농단을 단죄하는 역사의 판단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사면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응은 그야말로 중구난방입니다. 경선 때부터 박근혜 사면을 주장했던 윤석열 후보는 ‘늦었지만 사면을 환영한다“고 밝히면서 이명박을 사면하지 않았음을 지적했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이명박을 함께 사면하지 않은 것은 반대 진영의 분열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홍준표 의원 말고도 국민의힘에서는 ‘보수분열공작’이라는 반응이 적잖이 나타납니다. 박근혜 사면을 먼저 요구한 건 국민의힘입니다. 그 동안은 줄곧 건강상태를 내세워 사면을 요구했고, 경선과정에서도 모든 후보가 입을 모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면이 이뤄지자 보수분열목적 아니냐며 음모론을 들이대는 건 어이없는 반응입니다.
또 국민의힘에서는 한명숙 복권과 이석기 가석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희석시키려 박근혜를 이용했다는 물타기 사면 주장까지 흘러 나왔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는 정반대 물타기 주장입니다. 안 후보는 사면이 자신이 요구했던 것이라 환영한다면서도 이석기 가석방과 한명숙 복권을 끼워 넣은 건 물타기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12월 27일 오늘은 대표적 양심수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사면조치로 풀려난 날이기도 합니다. 1978년 제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사면을 단행했습니다. 사면 대상은 모두 5,378명, 김대중은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습니다. 무기징역을 살던 김지하 시인은 20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감형도 넓은 의미의 사면에 해당됩니다.
12월 27일 오늘은 유신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한 날입니다. 1972년 오늘 첫 체육관선거로 당선된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유신헌법을 공포했습니다. 일본 방문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은 귀국을 못한 채 유신체제 비판성명을 내고 일본 미국을 오가며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본체류중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습니다.
중정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자택에 연금됐던 김대중은 ‘명동 3.1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의 옥살이를 하면서도 김대중은 단식투쟁을 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옥살이 2년 9개월만에 사면된 김대중은 사면 뒤에도, 10.26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정치적 탄압을 받았습니다.
신군부는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해 김대중을 죽이려 했습니다. 미국의 반발과 교황의 도움으로 김대중은 무기로 감형되었고 2년7개월 뒤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다시 미국으로 쫓겨났습니다. 연금과 투옥, 망명으로 점철된 정치인생 속에서도 김대중은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해 독재와 싸워왔고, 그 노력이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김대중의 대통령당선 뒤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전직 두 대통령을 사면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 잘못에 대해 끝내 참회도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박근혜 사면을 정치세력간의 유불리로만 따져서는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