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69] 윤석열 ‘낭패불감’ 벗어날 길은 ‘중도확장’
낭패불감(狼狽不堪)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렵고 고약한 상황에 놓였다는 뜻입니다. 중국 삼국시대 촉(蜀)에서 벼슬을 했던 이밀(李密)이 쓴 『진정표(陳情表)』라는 글에 나오는 말입니다. 『진정표』는 촉이 망한 뒤 벼슬을 주려는 진(晉)의 임금에게 할머니의 병 때문에 못한다는 이유를 밝힌 글입니다.
‘낭(狼)’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은 동물이고, ‘패(狽)’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긴 동물입니다. 낭과 패가 짝이 되어 걸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뒤뚱거리다가 넘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어서 낯설기까지 한 낭패불감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한 건 지금의 대선 국면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적합한 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특히 ‘후보 따로 대표 따로’, ‘선대위 따로 당 따로’로 대표 사퇴가 거론되고 선대위 재편 요구가 뒤엉켜 있는 국민의힘 현 상황에 딱 들어맞을 겁니다. 뜻밖의 약점이 많이 드러난데다, 후보의 자질 문제까지 겹쳐 후보교체 여론도 커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망론(大望論)’이 ‘대망론(大亡論)’으로 바뀌는 건 아닌지 정말 낭패불감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 후보는 꿋꿋이 망언을 이어갔습니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무능과 불법을 아주 동시에 다 하는 엉터리 정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전문가가 들어오면 자기들 해 먹는데 지장” 있어서 “무식한 삼류 바보들 데려다가 정치를 해서 나라 경제 망쳐놓고 외교 안보 전부 망쳐 놨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색깔론과 지역감정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작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침없이 발언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좌익 혁명이념 북한의 주사이론 이런 걸 배워서 민주화운동 대열에 껴서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행세하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는 색깔론 공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권력에서 밀려난 국민의힘은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잇달아 참패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으로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높은 의석점유율을 보인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겨우 넘는 103석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0년 집권을 공공연히 거론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출구를 찾지 못하던 국민의힘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건 더불어민주당의 자책골 덕분이었습니다.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계기로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소속 단체장들의 잇단 성추문에 민심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총선 참패 불과 1년 만에 국민의힘은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습니다.
또 이준석 대표체제의 등장이 혁신 노력으로 비쳐지고, 꼰대정당 이미지가 약화되면서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젊은 층들에서 국민의힘 지지가 늘어났습니다. 윤석열이라는 확실한 카드도 등장했습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강한 것도 국민의힘에는 유리한 기회입니다. ‘대장동’으로 이재명 후보를 제압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겁니다.
그러나 다 잡았다고 여겼던 정권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꺼진 불은 아니지만 대장동은 이재명 후보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윤석열 후보의 본부장리스크가 더 커보입니다.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으로 윤 후보의 리더십이 의심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윤 후보가 낭패불감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중도확장입니다.
최근의 발언을 보면 윤석열 후보가 선택한 길은 색깔론과 지역감정으로 보입니다. 윤 후보가 박정희·박근혜 부녀대통령의 지역적 지지기반인 영남에서 독재정부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건 지역정서를 의식해서일 겁니다. 윤 후보의 착각입니다. 색깔론과 지역감정에 기대면 지금의 지지율은 까먹지 않겠지만 중도층 지지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