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선생님, 불세출 명작으로 불명예 회복하소서”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백석시선집> <개밥풀> 등 저자]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며 노경(老境)에까지 자신을 잘 지키고 무탈하게 지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평생 다 살고 미수(米壽)의 나이에 이르러 어찌 하여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교과서에서도 모두 퇴출되고 기념관, 문학관 계획도 일절 물거품이 되고 그의 존재조차도 잊혀져 가고 아무도 기억하는 이조차 없어져 간다.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하며 문단의 최고어른으로 자리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소란의 중심에 휘말리더니 급전직하(急轉直下)의 낭패한 삶이 되고 말았다. 사실 뒤돌아보면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던 그런 일화들이 많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오로지 비난 일변도의 글로 가득하다.
아무리 출중한 작품과 문학의 성채를 쌓은들 그것이 한 줌 모래성에 불과한 덧없는 것임을 그의 행적은 일깨워주었다. 고은 시인, 본명 고은태, 1933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이제 해가 바뀌면 여든아홉이 된다. 우리 나이로 아흔의 고개에 다다른 것이다. 그간 쌓아온 다수의 시작품과 문단활동은 한 순간에 와르르 매몰되고 말았다.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살아가시는지, 어떤 심경으로 가슴 속 당혹과 상처를 견디고 있는지, 그의 삶과 문학이 아무런 회복의 노력 없이 이대로 사그라들고 말 것인가?
바라건대 그 모든 비판을 일거에 뛰어넘는 불세출의 명작으로 불명예를 회복하시기 바란다. 순간적 재치와 위트, 놀라운 응축의 재능은 지금도 비범하게 다가온다. 다만 불필요한 장광설, 넘치는 웅변조의 어투가 몹시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인적 순정과 천재성은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다. 어느 해였던가? 내가 보낸 시집을 받고 화답 시를 하나 써주셨다. 배부른 암소가 간밤에 출산을 해서 온동네가 기쁨으로 가득하다는 그런 덕담을 보내주셨다.
화답(和答)이 될까?
우리 동네 아무개네 암소가 배 부르더니
배 불러 먼 데도 잘 안 보더니 마침내
제 새끼 쑥 먼저 나왔다.
온동네 식전 바람 기쁨이구나.
하늘 한 호레도 덩달아 푸르러 기쁨이구나.
꿈에 그대한테 보내는 걸로 썼는데
깨어나 그대로 옮긴 것이네.
천재성과 순정이 아니라 폐결핵. 썩은 화살이겠지 썩은 화살이 되어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 지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