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91] 선거철 철새, ‘배신’ 혹은 ‘소신’?
[아시아엔=손혁재 자유기고가] 철새의 계절입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철새들이 날아옵니다. AI(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철새가 반가운 겨울손님에서 반갑지 않은 천덕꾸러기 불청객으로 바뀌었지만 한때는 철새관광이나 탐조학습이 꽤 인기였습니다. 각급 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철새도래지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철새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선거를 전후해서 철새들이 날아다닙니다. 정치권에서는 이해관계를 따라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철새라 부릅니다. 사사로운 이익에 눈멀어 소신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시민의 뜻을 쉽게 저버리는 정치철새는 정치적 의리를 지키지 않는 소인배적 정치인입니다. 정치철새는 대통령선거 시기에 더 자주 나타납니다.
철새들은 먹이가 많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이동합니다. 정치철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싸한 명분을 붙이지만 본질은 사적 이익 확보입니다. 어떤 생물학 교수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화신인 당적 변경 정치인들을 철새에 비유하지 말아 달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으려 계절의 변화에 맞춰 삶의 터전을 옮기는 철새와 이들은 다르다는 겁니다.
자기 당 의원이 상대당으로 당적을 옮기면 ‘정치철새’지만 반대로 상대당 의원이 자기 당으로 오면 ‘구국의 결단’이라고 부른다던가요. 국회의원이 임기 중에 다른 당으로 가는 정치철새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입니다. 철새를 받아들이는 건 과거의 적대세력을 끌어안는 포용력과는 다릅니다. ‘돌아온 탕자’를 맞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철새정치인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 정치가 ‘질의 정치’가 아니라 ‘수의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정책으로 시민의 지지를 얻기보다는 ‘의원의 머릿수’로 정국주도권을 쥐려는 수의 정치는 머리 숫자를 늘리기 위해 아무나 받아들이는 ‘덧셈정치’였습니다. 그러나 그 덧셈이 시민에게는 ‘뺄셈’의 결과를 낳습니다. 정치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대위가 출범한 다음날 국민의힘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들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가 취약한 호남(전북 임실·순창·남원)을 지역구로 둔 이용호 의원(무소속, 재선)이 입당한 것입니다. 입당하자마자 공동선대위원장이 된 이 이원은 “두 갈래 길에서 어려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며 “어렵고 힘들고 험하지만, 옳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앞서가고 있습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시민도 많습니다. 국민의힘 입당은 어렵거나 힘들거나 험한 길이 아닐 겁니다.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의 손을 잡는 건 쉽고 편한 길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선택한 ‘옳은 길’일 수는 있으나 그를 뽑아준 지역구 유권자들에게도 ‘옳은 길’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려 했으나 거절당한 의원을 국민의힘이 받아들인 건 김한길 위원장을 끌어드린 것처럼 대선 승리를 위한 세불리기의 일환이었을 겁니다. 특히 호남출신이란 점이 부각되었겠지요. 그래서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이 의원에게 “호남지역 득표율이 좀 올라갈 수 있도록 애써“달라고 주문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철새정치는 시민에 대한 배신행위,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유권자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물론 모든 당적 옮기기를 한 묶음으로 ‘배신의 정치’라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여당이나 집권이 확실한 정당에서 야당이나 선거패배가 예상되는 정당으로 옮기는 건 ‘소신의 정치’이지 욕먹을 일이 아닙니다. 이용호 의원의 선택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철새들은 한번 자리 잡은 곳에 눌러 살지 않습니다. 바로 그 점이 텃새와 철새의 차이입니다. 철새 도래지 가운데 몇 곳에 요즘엔 철새가 날아오지 않습니다. 길 잃은 새들, 갈 곳 없는 새들만이 찾아온다는 겁니다. 먹이가 떨어졌기 때문인데 철새들은 더 좋은 먹이가 있는 곳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날아갑니다. 이용호 의원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언론인 출신의 이 의원이 정치입문 때 품었던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