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95] 축구와 선거의 공통점은?
손흥민 선수가 또 골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PSN 선정 전세계 포워드 순위에서 6위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ESPN은 선정 사유로 “수비 가담 및 공간 창출 능력, 힘 있는 움직임과 공격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활동 반경”을 들었습니다. 또 한국 대표팀은 “빠른 판단력을 이용한 득점력이 매우 좋”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손흥민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에게 국제대회는 너무나 높은 벽입니다. 아시아권에서는 그런대로 성적이 좋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우리 대표팀은 예선에서 탈락해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사상 처음으로 꺾었다는 사실입니다.
축구는 슈퍼스타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승리하는 건 아닙니다.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이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 자리를 다투고 있는 메시와 호날두가 있음에도 모두 러시아 월드컵 8강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보가 아무리 높은 지지를 받고 있어도 당이 제 구실을 못하면 선거에 지기 쉽습니다.
윤석열 국민의당 후보는 현직 검찰총장일 때부터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떠올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게 탄압받으면서도 공정과 상식을 지켜왔다는 이미지로 포장한 윤석열 후보는 단숨에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몰락 이후 대선, 지방선거, 총선에서 잇달아 패배한 국민의힘으로서는 보물이 굴러들어온 셈입니다.
윤석열 후보의 힘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정부·여당이 촛불시민의 혁신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서 정권교체론이 강합니다. 국민의힘이 정당지지도도 앞서고 있고, 지난 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도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얼핏 보면 유리한 국면 같지만 윤 후보의 정치적 미숙함으로 자살골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있습니다.
축구팀이 연습 때나 평가전에서 아무리 잘해도 실제 시합에서 이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나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 개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없으면 비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여론조사에서 앞서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걸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이회창 후보입니다. 이 후보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1.6%(39만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졌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2.3%(57만표) 차이로 또 떨어졌습니다. 이 후보는 두 선거 모두 여론조사에서 계속 앞섰지만 결과적으로 졌습니다. 다 이긴 경기를 막판 1분을 버티지 못해 역전패당한 셈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느닷없이 윤석열 후보의 일정과 다르게 움직인 데는 아마도 이런 패배의 쓴맛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표-윤 후보 사이의 갈등이 당헌상 보장된 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둘러싼 당 운영의 주도권 다툼만이 아니라 당 대표-후보 간의 소통 부재로 대선 전략이 삐걱거렸기 때문인 겁니다.
이준석 대표의 움직임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던 윤석열 후보가 울산으로 부랴부랴 내려가 이 대표와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기현 원내대표도 함께 했고, 이들은 후보-당 대표-원내대표 사이의 직접소통 강화 등에 합의하면서 당내 분란을 극적으로 풀었습니다. 여기에 밀린 숙제였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합류 문제까지 풀었습니다.
선대위 출범을 코앞에 두고 벌어졌던 국민의힘 내부 갈등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난 듯 보입니다. 대선을 지휘할 감독의 영입 문제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이처럼 첫 번째 단추는 잘 꿰었지만, 그렇다고 두 번째 세 번째 단추가 저절로 잘 꿰어지는 건 아닙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져 꽃길이 될지, 어느날 싱크홀이 발생해 흙길이 될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