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96] 촛불집회의 회고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꼭 5년 전인 2016년 오늘은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날입니다. 탄핵소추안은 12월 9일 국회에서 가결되어 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직무정치를 당했습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만장일치로 인용하면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던 바로 그날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온나라에서 제6차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주최측은 이날 촛불집회 참여 시민이 232만명이라고 추산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이를 보고 “현시대 최대규모의 집회”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기록은 2020년 2억5천만명이 모인 인도농민시위에 의해 깨집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난 뒤 2016년 10월 29일 3만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될 때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열려 총 23차례 연인원 1,700만 여명이 참가했습니다. 많은 인원이 모였음에도 폭력사태가 없는 평화집회라는 평가 속에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촛불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다며 인권상을 주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되어 임기를 마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되었습니다. 뇌물, 블랙리스트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새누리당 공천개입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량은 징역 총 22년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입니다.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장기집권을 했던 독재자 아버지에 대한 극우보수의 충성과 지지를 자양분 삼은 첫 번째 여성대통령의 끝은 이렇게 허망했습니다. 그는 헌정유린과 국정농단, 무책임한 국정운영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3불(불통 불안 불공정) 3무(무능 무책임 무원칙)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유신독재의 망령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촛불항쟁으로 물러난 강경보수세력이 불과 5년 만에 되살아났습니다. 국정실패에 대해 반성이나 참회, 새로 태어나려는 노력도 별로 없었습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추운 겨울을 촛불로 녹였던 국민의 여망”을 받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판단에 시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촛불정부’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를 실현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상징되는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게 현 정부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이자 소명이었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광장의 외침에 ‘이게 나라다’를 보어주어야 했습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적지 않은 성과도 거두었습니다만 이제 6개월을 남겨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높지 않습니다. 썩고 곪은 곳을 도려내고 굽은 것을 펴고 바로잡으려 했지만 적폐청산과 개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국민을 지켜낸 K-방역의 성과만 외로이 빛날 뿐입니다.
초기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을 이끌었던 한반도 평화정착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빛이 바랬습니다. 현 정부의 가장 뼈아픈 실책은 많은 시민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부동산 정책의 실패입니다. 일자리정책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실물경제에도 시민들에게도 체감되지 못한 채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시민의 좌절도 큽니다. 촛불정부라면서 임기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시민의 꾸짖음에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모든 것을 던져 응답해야 합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도 반사이익에 기대어 비판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전임 정부의 실패를 진지하게 참회하고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