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92] ‘윤석열 현상’의 허와 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선거라는 정치시장에서 윤석열 후보라는 상품을 파는 역할은 여러 시장에서 오래 장사를 했던 김종인-김병준-김한길 위원장에게 맡겨졌습니다. 매상에 중요한 변수가 될 20,30대 젊은 정치소비자들에게 윤석열 후보라는 상품을 파는 역할은 그들의 성향을 비교적 잘 아는 이준석 대표에게 맡겨졌습니다.
과연 이들은 윤석열이라는 상품을 선거 시장에서 제대로 팔 수 있을까요? 아무리 장사를 잘하는 상인도 상품의 질이 떨어지면 제대로 팔기 어렵습니다. 일단 선거 시장의 지형은 윤 후보에게 유리합니다. 믿고 뽑았던 문재인이라는 정치상품의 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을 가진 시민은 윤 후보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새로운 상품입니다. 이준석 대표가 출범식에서 말했듯이 윤 후보는 정치입문 4개월 만에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정치적 신데렐라’입니다. 신상품이 모두 히트상품 대박상품이 되는 것이 아니듯 정치신인이라고 대박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도도 높지만 비호감도는 더 높게 나옵니다.
새로운 상품이 반드시 기존의 상품보다 질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새롭다는 건 신선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미숙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일 1실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 후보는 미숙함을 드러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윤석열 후보를 “강직한 공직자”이며 “공정과 정의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어느 상인도 자기 상품이 나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2010년 한국정치에 불었던 돌개바람을 기억하실 겁니다. 기존의 정치판을 뒤집어버릴 듯 맹렬한 기세로 불었던 바람의 정체는 안철수 신드롬이었습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질 보궐선거에 출마선언을 하지도 않았는데 언론에 안철수라는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단숨에 40% 안팎의 압도적 지지율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었습니다.
안철수 신드롬은 시민들이 정치와 정당에 대해 얼마나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기존 정당과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정치권 밖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정한 기반을 구축한 이들에 대한 기대와 지지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안철수 교수가 출마하지 않은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변호사도 시민운동의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2002년에도 비슷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을 차지했습니다. 뜻밖의 좋은 성적은 정몽준 축구협회장을 단숨에 대선후보로 부상시켰습니다. 월드컵을 훌륭히 치러내고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했으니 정치도, 대통령 노릇도 잘 할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그러나 정몽준 의원은 정치적 업적이 하나도 없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1997년에도 있었습니다. ‘전국구 초선’인 이회창 의원은 정치 입문 18개월 만에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원칙을 지키려는 모습이 기존의 보수 정치에 대한 의로운 항거로 비쳐지면서 개혁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미지는 그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지지율이 높다고 꼭 당선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회창 후보는 세 번 대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떨어졌습니다. 정몽준 의원은 정당을 만들어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출마도 못했습니다. 후보사퇴, 대선패배를 겪은 안철수 후보는 3.9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지만 존재감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지지율도 한 자리수로 10년전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윤석열 현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은 있었지만 ‘정치인 안철수’가 성공하지 못했듯이 ‘윤석열 현상’이 ‘정치인 윤석열‘의 성공을 가져오는 건 아닙니다. 닮고 싶은’ 멋지고 훌륭한 인물과 ‘찍어줄 만한’ 좋은 후보 또는 ‘찍어주고 싶은’ 매력적인 후보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 잘쓰셨다. 팩트를 정확히 말하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