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선의 시와 달빛⑤] ‘데카메론’···세 여자와 네 명 남자들 이야기

데카메론

데카메론*
-세 여자와 네 명 남자들 이야기

                                                                  기름에 불이 붙듯 페스트는 번져갔다

도망쳐 찾아온 곳 마테라 동굴 마을, 죽음이여 인간들의 영혼을 건들지 마오. 인간은 죽었다가도 여러 차례 부활하오.

우리는 무서워서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1 여자. 귀부인 이야기

남편이 친구 부부를 저녁에 초대했지 식사 후 친구 아내와 남편이 안 보이데 그녀가 남편 품에서 간지럽게 자는 거야/ 그다음 날 친구네가 우리 부부를 초대했어. 저녁을 먹고 난 후 남편 친구가 날 껴안네! 두 사람 앞에다 두고 나를 마냥 애무하데 -그 뒤 우리는 공동 부부가 됐지,*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 패러디

#2 여자. 실연당한 사람들만 모이는 저녁 모임

미망인을 연모해서 마리오는 서성댄다. 미망인이 마리오를 문 앞으로 부른 날밤 그녀는 다른 애인에게 푹 빠져서 놀고 있네/ 마리오는 문밖에서 아침까지 기다렸어! 그는 춥고 서러워서 복수를 결심했지 마침내 보복의 날이 스스로 찾아왔네/ 미망인, 그의 애인이 딴 여자랑 바람났데 그녀는 염치없이 마리오를 찾아와서 애인이 돌아올 방법 좀 찾아 달라 애걸하네/ 배신당한 그녀에게 갓 구워낸 주문 주며 달뜰 무렵 개울에서 일곱 번 목욕하고 저 탑에 발가벗고 올라가 종일토록 주문 외우라네/ 그녀는 그 주문을 밤새도록 외웠다네 태양에 살이 타는 낮 동안도 외우다가 때가 돼 내려가려니 사다리도 마리오도 사라졌네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 패러디

#3 여자. 실제 상황

시어머니 일곱 분을 모시고 살았어요. 요일을 정해놓고 일곱 집일 해왔지요 재산 좀 물려받으려고 눈 딱 감고 참아냈죠/ 일 년이면 새 여자로 갈아치우던 시아버지 지난해 삼십 대와 정식결혼 하시더니 그에게 토지 빌딩 몽땅 빼앗기고 저승으로 가셨어요.

#4 남자. 어느 경찰이 들려준 이야기

치매 앓는 아버지가 간암 앓는 아들보고 가슴을 움켜쥐며 나를 먼저 보내다오 흐릿한 삼색 싸인 볼만 홀로 돌며 듣고 있다/ 아들에게 물려줄 건 낫지 않는 오래된 병 한때는 알아주던 흰 가운의 이발사가 회색빛 점포 안에서 부자 함께 식어갔다

#5 남자. 촉법살인

“경찰서 재낄 준비 끝났냐 야들아!” 담배를 문 열네 살들 셀카를 찍으면서 영화의 주인공인 양 두 어깨에 힘을 준다/ 밤마다 차 훔쳐 사고 치는 소년들이 sns에 범죄전시 박수를 받고 있다 새벽을 찢으며 질주하는 타이어의 날 선 비명 *4월 16일 자 ㅁ신문에서 패러디

#6 남자. 동네 아줌마

“엄마! 폐지 줍는 저 할머니 불쌍하지” “그래,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이 말을 듣는 그 순간 머리에서 쥐 났다/
정말로 애 교육을 저렇게밖에 못해, 우리들 퇴직하면 저 일인들 차례 올까. 할머닌 허리를 쭉 펴며 먼 허공을 바라본다

#7 남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함 이야기

코로나 19 확진자가 하나둘 늘어나자 해군에서 승조원들 하선을 막는 거야 “전시가 아닌데 수병이 죽어서는 안 됩니다” -부하를 살리려고 이 말을 한 함장은 해임됐다.

창문을 뒤흔드는 음산한 기운 온 대지에 감도네

*조반니 보카치오의 작품 인용.
보카치오 작 <데카메론>

♣ 시조는 어느 특정의 선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왕에서부터 기생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지어 불러온 노래였다. 현대 시조에 들어와 기록되기 시작하며 하나의 문학 장르가 되었다.

충의, 절의, 효, 자연 친화, 사랑가, 사회 비판, 해학과 풍자 고결한 숨결 등 다양한 의식을 담아온 유일한 우리나라만의 전통 문학이다. 이 문학 장르가 현대 시조라는 명칭을 달고 나왔으나 문학인 스스로가 진부하고 구태 하다고 여기는 수모를 받아 왔다.

시조를 이렇게도 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요즘 등단한 시인들이 또는 시조의 변형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 시인들이 형식을 파괴하거나 행간 구분을 의미도 없이 나누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일곱 편 모두 3장 6구 45자의 형식을 철저히 지켜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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