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등소평과 모택동 중 누굴 더 닮고 싶을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21년 7월 1일 중국 공산당이 창립되고,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거쳐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다. 중국은 2021년 건국 백주년을 맞았으며, 시진핑은 중국몽을 제시했다. 중공군이 창설될 때 최초 사령원은 주덕朱?, 정치위원은 모택동毛澤東이었다.
유격전을 실제로 이끈 지도자는 모택동이었으며 그는 중공군을 승리로 이끈 대 전략가였다. 주덕, 팽덕회彭德懷, 임표林彪 등은 군사 전략가였다. 중공군은 국군國軍이기 이전에 당군黨軍이다. ,
중국공산당(중공)은 중앙위가 핵심이다. 중앙위에서 정치국, 정치국에서 상무위원회가 나오는데 정치국 상무위(政治局 常務委)가 중공을 통치하는 핵심이다. 총서기, 국무원 총리, 전인대 상무위원장, 정협 주석,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포함된다.
정치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위원이 되어야 한다. 중앙위원은 전당대회에서 선출된다. 실적과 능력이 치밀하게 평가된다. 중공에서 임명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선거가 이루어지는 단위는 중공 중앙위며 중공 권력기구의 중추로 영국의 의회에 해당한다.
등소평鄧小平은 백만 감군을 했다. 워낙 대군이었고 등소평의 권위가 막강해서 가능했다. 등소평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던 자리가 당 군사위 주석이다. 총서기도 아니고, 국가주석도 아니다.
현재는 당 총서기가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한다. 시진핑이 중공군을 통솔한다. 중공은 현대에 드문 군국주의 국가다. 중공군은 거대한 회사이기도 하다. 자체로 생산과 무역도 한다.
시진핑이 장쩌민(강택민, 江澤民), 후진타오(호금도, 胡錦濤)의 10년 집권을 넘어 장기집권을 하려 한다. 뚜렷이 떠오른 후계자도 없다. 후진타오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내건 ‘과학발전론’을 모택동 사상, 등소평 이론과 더불어 당의 지표로 만들었다.
시진핑의 집권연장 시도는 등소평의 유훈에 반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모택동의 권위를 빌리려 한다. 자신을 연안 시절의 모택동과 일치시키려는 선전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과 총리를 번갈아 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의 행보가 일치하는 것도 주목되고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1964년 도쿄올림픽 같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지난 여름 도쿄올림픽 정도로 끝나기도 쉽지 않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불참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동맹인 미국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무역의 중국을 따를 것인가?
6.25전쟁 개입은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위해서라는 중국의 명분은 일관된다. 1950년 장진호전투와 1953년 금성전투를 부각시키는 선전영화는 미국에 대한 적대감과 이에 대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아울러 표명하고 있다. 문제는 유럽이 미국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