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생 마감 여순에서 생각난 ‘권학문’과 ‘창어 1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안중근 의사가 최후를 보낸 뤼순(여순, 旅順)에 갔다. 러시아가 청일전쟁에 패배하여 일본에 빼앗긴 곳이다. 서해의 중요한 해군기지다. 수군이 고구려를 침공하려 출발하던 비사성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온 장군이라고 소개하고 중학교 학생들에 주자의 권학문勸學文을 써주니 따라 읽는다. 반갑고 놀라웠다.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나이를 먹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한 순간의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연못의 봄풀은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섬돌에 떨어지는 오동 잎사귀는 가을을 일러준다.
중국에서 장군의 지위는 높다. 예편해도 군복을 입으며 부관, 운전병, 간호장교가 뒤따른다. 실무만이 면제될 따름이다, 남재준 참모총장은 예편식 후 손수 자가용을 몰아 떠났다. 파월 미 합참의장이 교육사령관일 때 출근하는 때는 운전병이 나오나 퇴근 때는 스스로 운전했다는 이야기가 회고록에 나온다.
중국 군사위 부주석 유화창과 장진은 80세가 넘어도 현역으로 부대를 시찰한다. 전선에서는 사단장까지도 지휘만이 아니라 전투를 직접 할 수 있는 체력을 단련한다. 항일전쟁 이래의 전통이다. 북경 근위사단을 방문했을 때 이를 강조하는 것을 보았다.
군관구 섬서성 군사령원은 지위가 높다. 환영 만찬에 정치위원과 같이 했다. 영어로 소통하기도 어려워 위하謂河를 건너면서 왕유王維의 송안이사안사送安二使安使가 생각났다고 하며 쪽지에 적어 건넸다. 끄덕 끄덕했다. 한국군의 문장력과 고전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당唐은 동아시아를 정복하고 6도호부를 두었다. 신라는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당 20만 대군을 물리치고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구축해 통일을 완수했다. 감숙성의 안서도호부는 토번에 의해 없어졌다. 월남의 안남도호부도 월남에 의해 쫓겨간다.
월남은 중국과의 투쟁에 있어 우리와 같다는 것을 월맹 방문 때 알았다. 서장西藏 티베트인의 저항도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중국 일상을 보면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것을 절감한다. 중국에서 일하다보면 특히 그렇다고 한다. 성장省長이 사장이고, 성 서기書記가 회장이다. 일은 성장이 하되 결심은 서기가 내린다. 성장을 만나서 일이 성사되더라도 최종 결정은 당 서기를 만나야 한다.
등소평이 1981년에서 89년까지 당 군위 주석을 지냈고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자리가 이 자리다. 오늘날에는 당 군위 주석이 국가군사위 주석을 겸한다.
등소평 시대는 군과 당이 일체였다. 그러나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은 군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군민관계가 분리되었다. 앞으로 이공계 출신이 많은 중국 지도층이 80세 상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와 다를 것이다.
시진핑 시대의 창어 1호 달 탐사 성공과 엊그제 선저우 13호 우주선 발사 등은 바로 군사과학 발전과 연계된다. 미국이 주목하고 경계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공군이 대만 영공에 침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항공모함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많이 해보고 중동에서 압도적으로 이겨본 경험과 베트남 및 아프간에서의 궁극적 패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전법과 전투력은 역시 막강하다.
오는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암살한 날이다. 새삼 안 의사와 권학문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