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뻘 조선학과 후배들아, 넘지 못할 벽은 결코 없다네”

황성혁 자전 <넘지 못할 벽은 없다> 표지

[아시아엔=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현대중공업 전무 역임, <사랑 인생 길에서 익다> <넘지 못할 벽은 없다> 등 저자] 지난 봄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다. 가는 길에 조선학과 신입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마련되었다.

계산해 보니 그동안 나도 어지간히 오래 살았다. 63년 나이 어린 후배와 함께 하다니. 젊은이들의 조선(造船)에 대한 열망이 많이 식었다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의 어려웠던 조선소의 재정 형편과 최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역병이 학생들의 조선소 가겠다는 열의를 많이 식혀 놓았다고 했다.

우선 나는 뱃놈으로서의 오랜 이력을 들려주었다. 1958년 대학 입학, 65년 졸업. 그리고 종합기계 공장에 입사해서 기계를 설계하던 이야기를 했다.

드디어 197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서 나는 크게 날아올랐다. 그때까지 어항 속에서 꼬물거리던 나는 갑자기 태평양으로, 대서양으로 던져졌고 고래가 되었다. 작은 고기의 미끼거리도 되지 않던 피라미가 거대한 고기도 꿀꺽 삼키는 바다의 최대 포식자가 되었다.

쉰 살 나이가 되던 해 나의 작은 사무실을 차렸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와 배에 대한 일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

의기소침한 신입생들을 위해 신나는 세계 조선해운 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2년 체험했던 ‘Super Cycle’의 재현이라고 허풍 떨 정도로 시장은 호전되고 있다. 그 시장의 진국은 한국의 몫이다. 왜냐하면 오늘 최대의 화두인 지구온난화를 극복하는 방법을 선박에 적용하는데서 한국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입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나는 탈탄소화(Decarbonization), 국제해사기구 규정(IMO Regulation)의 2030, 2050을 향한 탈탄소화 목표를 들려주었다. 클락슨 보고서(Clarkson Report)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 선박 신조 물량이 대폭 증가할 것이고 한국 지분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통상 학생들이 별로 질문을 하지 않아 걱정했는데 질문이 쏟아진다. 그들과 나는 열띤 대화를 나누었다. 중요한 질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탈탄소화(Decarbonization)는 가능한 목표인가?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필수가 되었다. Oil Major들은 이미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3년 전만 해도 탈탄소화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것은 모든 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할 경우 국가와 산업이 물어야 할 벌금은 엄청나다. 그것을 이룰 때까지 LNG, LPG의 이중연료 시스템이 활용되고, 궁극적으로 수소, 암모니아,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에 이르기까지 탈탄소화 방향으로 향한다.

-일본, 중국과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일본은 유럽이 60년대부터 노조 등 여러 가지 원인들로 조선에 신기술 도입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용접을 선박에 적용해 조선입국을 이루었다. 그러나 80년대 시장환경이 어려워지자 “It is time to take our hat off, and bid farewell to the industry”을 선언하고 조선공업의 사양화를 받아들였다. 그때 일류대학에서 조선학과가 사라졌고 그 결과 일본은 새로운 기술로부터 멀어졌다. 일본의 일류 조선소가 한국 이류 설계 사무실에 선박 설계를 의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는 이순신 장군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일본과의 수주경쟁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다. 그것은 국민성 탓일 수도 있다. 일본 사람보다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한국 국민성이 고객의 마음을 열고 우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2000년대 초기 400개 넘는 조선소가 있었다. 그들의 임금이 한국의 1/5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그들의 생산성은 한국의 1/5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전체 생산원가는 같아지지만 선박의 품질 문제가 남았다. 5년 쯤 쓴 중고선의 경우 한국 배가 중국 배의 2배를 받는다. 결국 중국 조선소는 대부분 파산했고 이제 3개의 거대한 국영조선의 우산속으로 들어가 연명하고 있다. 경쟁력 없는 국영산업의 말로는 뻔한 것이다.

-북해 항로(North Sea Route)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지구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아 한정된 기간 동안 해로가 열린다. 이것은 러시아의 해운을 위해 획기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북유럽으로부터 극동으로 나오는 수송로를 대폭 단축하기 때문이다. 유럽 선주들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송로 단축으로부터 생기는 이익도 있지만 북극 항로를 지나가기 위해 Ice Class를 업그레이드하는 큰 추가 비용도 생각해야 된다.

-수소 연료를 활용화할 방안은?
=수소는 지상에 가장 흔한 연료다. 만들기도 쉽다. 이미 몇몇 나라는 해상에서 풍력발전을 하여 그 전력으로 그 자리에서 바닷물을 전기분해 한다. 거기서 생산된 청정 수소를 연로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소는 액화온도가 극도로 낮고 수송 방법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여러분의 젊고 총명한 머리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분야다. 수소보다 취급하기 쉬운 암모니아는 탈탄소 연료로 이미 시험되고 있다.

-한국에서 여객선 건조가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우선순위에서 타 상선에 뒤진다. 여객선은 선박이라기보다 호텔에 가깝다. 유럽에서도 전통적으로 특수화된 조선소가 짓고 있다. 일본 최고의 조선소인 미쯔비시가 여객선 3척을 척당 7억달러에 수주했으나 완성한 뒤 원가가 15억달러로 계산되었다. 유럽 사람들과의 정서적인 차이가 있어서 설계 및 건조를 통해 큰 손해를 불러온 것이다. 파산한 STX조선이 외국의 유수한 조선소를 인수하여 여객선 건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삼성도 세계 최대의 여객선을 건조할 계획을 가지고 선주와 마지막 단계까지 협상을 했으나 계약에 이르지 못했다.

-GTT가 그들이 보유한 기술로 너무 횡포를 부리는 것 아닌가?
=그들이 누리는 독점적 입지에 대해 나도 사실 배가 아프다. 그들은 너무나 많이 챙겨 간다. 그러나 젊은 여러분은 배 아파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무적인 사례로 받이들이기 바란다. 더 훌륭한 기술을 개발하면 우대받고 큰 부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 학생들이 활발하게 질문하였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 때문에 아쉽게 끝을 맺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로 마무리 하였다.

“나는 평생에 많은 결심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결심은 조선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올해 내 나이 83세다. 조선을 전공한 덕택에 오늘날까지 세계와 소통하며 이처럼 후배들과도 동락할 수 있는 것이다. 선박은 거대하고 아주 비싼 물건이다. 때로는 그 규모에 질려 좌절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 거대한 괴물의 한 부속, 작은 졸개가 될 수밖에 없어. 결코 주인이 되지 못해’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 괴수는 말을 아주 잘 듣는 유순한 물건이다. ‘나는 너의 주인이야. 내 말을 들어’ 하면 그 괴물은 순순히 따라온다. 여러분들이 ‘나는 보잘 것 없는 부품이야’라고 좌절하면 여러분들은 부품으로 끝난다. 그러나 ‘나는 주인이야. 내가 이 배의 성능을 개선하고 이 시장을 좀더 올바르게 이끌어 갈 거야’라고 결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어 우뚝 서기를 바란다. 나도 여러분들이 세상을 휘젓고 다닐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지켜보겠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