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한인희생⑥구본석 LG화재 뉴욕지점장] 시신 못 찾아 한줌 흙으로 장례식

9.11 희생자 구본석씨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무고한 희생자 중에는 한인 21명도 있었다. 두개 동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추모의 연못 ‘노스풀과 사우스풀에는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있다. 9.11테러 현장인 로어 맨하탄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9.11추모박물관에는 한인 희생자 21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한인 희생자들은 노스 풀에 경희 케이시 조, 파멜라 추, 프레드릭 한, 강준구, 앤드류 재훈김, 로렌스 돈 김, 구본석, 린다 이, 리처드 이, 스튜어트 수진 이, 박계형, 크리스티나 성아 육, 대니얼 송씨 등 모두 13명이, 사우스 풀에는 대니얼 이, 이동철, 수 김 핸슨, 이명우, 이현준, 진선 박 웰스, 데이빗 이, 아놀드 임씨 등 8명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시아엔>은 이들의 사연을 독자들께 전한다. 먼저 언론에 알려진 한인 희생자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추모박물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름을 검색해 사진과 이야기를 직접 카메라로 찍어서 기사에 첨부했다. 또 인터넷 등에 있는 희생자 가족이나 지인들 인터뷰 등을 찾아 기사에 붙였다. <편집자>

구본석 (1959년 2월 1일 ~ 2001년 9월 11일), 향년 42세

[아시아엔=김동연 <아시아엔> 미주 통신원] 대한민국 대구시에서 태어나 자란 구본석씨는 1998년 LG화재 뉴욕지점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사를 갔다. 구씨는 당시 부인(윤호)과 10대 두딸과 함께 뉴저지주 리버엣지에 거주했다. 골프가 취임인 그는 두 딸 숙제를 도와주곤 했다. 사고 당일, 구본석씨는 북쪽 타워(1번 빌딩) 84층 사무실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하고 있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구본석씨 가족들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한국경제> 2001년 9월 14일자 기사에 따르면, 부인은 사고 당일 이후 며칠간 남편 흔적을 찾기 위해 폐허가 된 맨해튼 거리를 헤맸다고 한다. 그녀는 아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다가가 남편 사진을 보여주면서 행방을 물었다. 부인은 당시 “건물 잔해 속에서 우리 교민 여러 명이 살아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이도 어디에선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었다.

하지만 2002년 다시 만난 부인은 결국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나마 건진 구본석씨 흔적은 신분증 하나밖에 없었다. 뉴욕시 당국은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에게 사고 현장의 흙을 주었고, 이를 갖고 장례를 치렀다. 설상가상으로, 부인과 두 딸은 구본석씨가 실종된 지 1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비자에 문제가 생겨 미국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구본석씨 유족들의 소식은 그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고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사고 다섯달 뒤인 2002년 2월 새로 LG화재 뉴욕지점장으로 부임한 윤성호씨다. 2002년 9월 11일 <국민일보> 기사에 따르면, 신임 지점장 윤성호씨와 전임 구본석씨는 1983년 LG화재에 함께 입사한 동기였다. 그때부터 서로 호형호제할 만큼 절친 사이로 지냈다. 이후 윤성호씨는 1994년 LG화재 뉴욕지점장으로 부임했고, 그 후 딱 4년이 지난 1998년 구본석씨가 뉴욕 후임 지점장이 되었다.

9.11 테러 직후 구본석씨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윤성호씨는 사고수습대책위원장으로 뉴욕에 파견되었다. 현지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어 슬픔도 더 컸다고 전했다. 윤 지점장은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였기에 고인의 유족 못지않게 충격이 크다. 하지만 사고 수습을 위해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다시 문을 연 LG화재 뉴욕지점은 2002년 당시 기준 윤성호 지점장을 포함한 직원 4명이 근무했다. 테러 1주기에는 구본석씨 영정을 사무실에 차려놓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후 맨해튼 중심부로 사무실을 옮겼지만, 9월 11일은 LG화재 뉴욕지점 모두에게 아픔을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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