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한인희생⑤로렌스 김] ‘셀린 디온’ 즐기던 ‘프로이트’ 독서광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무고한 희생자 중에는 한인 21명도 있었다. 두개 동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추모의 연못 ‘노스풀과 사우스풀에는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있다. 9.11테러 현장인 로어 맨하탄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9.11추모박물관에는 한인 희생자 21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한인 희생자들은 노스 풀에 경희 케이시 조, 파멜라 추, 프레드릭 한, 강준구, 앤드류 재훈김, 로렌스 돈 김, 구본석, 린다 이, 리처드 이, 스튜어트 수진 이, 박계형, 크리스티나 성아 육, 대니얼 송씨 등 모두 13명이, 사우스 풀에는 대니얼 이, 이동철, 수 김 핸슨, 이명우, 이현준, 진선 박 웰스, 데이빗 이, 아놀드 임씨 등 8명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시아엔>은 이들의 사연을 독자들께 전한다. 먼저 언론에 알려진 한인 희생자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추모박물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름을 검색해 사진과 이야기를 직접 카메라로 찍어서 기사에 첨부했다. 또 인터넷 등에 있는 희생자 가족이나 지인들 인터뷰 등을 찾아 기사에 붙였다. <편집자>
로렌스 돈 김 (Lawrence Don Kim, 1969년 11월 22일 ~ 2001년 9월 11일), 향년 31세
[아시아엔=김동연 <아시아엔> 미주 통신원]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계 미국인 로렌스씨는 사고 당시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로렌스씨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와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는 것부터, 가수 셀린 디온의 노래를 즐겨듣고, 미식축구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경기를 꼭 챙겨보았을 만큼 다양한 관심사와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김씨는 테러 발생 전날 보험중개회사인 마쉬&매클래넌(Marsh & McLennan) 정보기술팀 부장으로 발령받아 첫 출근 했다. 9월 11일 근무 둘째 날, 그는 북쪽 타워(1번 빌딩) 92층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마쉬&매클래넌 웹사이트에는 그를 비롯해 희생 직원들을 추모하는 회고록을 찾아볼 수 있다. 회사 동료들이 기억하는 그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로렌스씨는 음식으로 말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뉴욕 노점상에서 파는 따끈따끈한 도넛과 향기로운 와인, 그리고 갓 구운 핫도그뿐만 아니라, 여동생의 정성이 담긴 팬케이크까지 좋아했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최고는 바로 로렌스씨가 부친께 직접 만들어 드린 좌종당계(左宗棠?, General Tso’s Chicken, 한국의 깐풍기와 유사한 미국식 중화 닭튀김 요리)였다.
회사에서 로렌스씨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지식을 갈구했다. 프로이트 원서를 읽기 위해 직접 독일어를 배웠을 정도다. 게다가 마르틴 하이데거의 저서 <존재와 시간>의 판본을 여러 개 소장하고 괴테의 <파우스트>의 몇몇 구절을 직원들과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로렌스씨는 철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도 정말 열심히 즐겼다. 어느 날, 회사 동료들이 로렌스씨 사무실 문을 열어봤다가 가수 셀린 디온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게다가 어떤 때는 톰 행크스 주연의 <필라델피아> 를 스무번이나 돌려보고, 거기 나온 대사를 전부 외웠을 정도다.
로렌스씨는 정말 지독한 일벌레였다. 직전 플로리다주 탬파 사무실에서 근무했을 때 보안 요원들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로렌스씨 승용차가 회사 주차장에 8일 동안 쭉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쉬&매클래넌에 입사해서도 그의 부지런함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당시 주차기록은 근무 두번째 날 9월 11일 오전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로렌스씨가 자동차를 몰고 회사에 일하러 온 것이 포착됐다. 이것이 로렌스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