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야구팀 비난 이제 그만! “격려하고 위로해주자”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도쿄올림픽에서 야구와 여자배구는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민 시선은 완전히 다르다. 여자배구에 찬사를 늘어놓는 반면 야구팀은 죄인처럼 돼 있다.
여자배구는 이번에 상대적으로 전력이 매우 뒤떨어졌다. 팀의 기둥이던 이다영 이재영 쌍둥이 자매가 학폭사건으로 물러나 출전 못했다. 핵심전력 2명이 빠진 여자배구팀은 예전의 팀이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감독 라바리니는 여자배구팀을 올림픽 본선에 진출시킨 것만으로도 소명을 다했다.
여자배구 세계 랭킹 1위는 미국이며, 브라질, 중국, 터키, 일본, 도미니카가 2-6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르비아는 10위에 랭크됐지만 실력이 급상승해서 우승후보로 간주되고 있고, 도미니카도 7위이다. 한국의 세계랭킹은 14위에 불과했다. 다행히 예선편성은 운이 좋아서 브라질 세르비아 일본 도미니카 케냐와 같은 A조가 되었다.
케냐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보다 객관적인 전력이 앞선다. 더구나 쌍둥이 자매가 빠진 상태에서 한국여자배구팀은 케냐 말고 승리할 만한 팀이 없었다. 그런데 여자배구팀은 놀라운 괴력을 발휘했다. 케냐는 예상대로 이겼지만 도미니카에게도 3:2로 이기고 6월에 열린 올림픽 전초전 대회(VNL)에서 0:3으로 졌던 일본에게도 3:2로 설욕하고 8강에 올랐다. 일본과 한때 세계 최강이었던 중국도 B조의 강팀들에게 밀려서 탈락했다.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었던 한국이 오히려 8강에 올랐다.
8강전 상대는 터키였다. 터키는 매우 강팀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만만하게 보인다. 더구나 오랫동안 김연경이 터키리그에서 활약하면서 터키팀을 잘 이해한다. 결국 한국은 터키마저 3:2로 제치고 8강에 오른다. 하지만 그게 기적의 마지막이었다. 준결승전과 3위 결정전에서는 브라질과 세르비아에게 져서 여자배구는 4위를 차지했다.
여자배구는 기대치가 낮았는데 조 편성의 운이 좋았고 2:2 상황의 마지막 세트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계속 승리했다. 특히 일본과의 마지막 세트에서 11:14로 뒤지다 16:14로 역전하는 순간 국민들이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배구에서는 실력을 넘어서는 운과 기적이 따라주었다.
반면에 야구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베이징올림픽 우승팀으로서 이번에도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고 국민들이 믿었다. 하지만 6팀이 출전한 도쿄올림픽에서 객관적인 수준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도미니카와 3위를 다투는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괴력을 발휘했던 기억이 있어서 모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한국 야구대표팀은 이스라엘과 도미니카에게 이겼으나 미국과 일본에 중반까지 대등한 경기를 벌이다 마지막에 져서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렸다. 이번에는 도미니카에게 패해 4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일본에 졌을 때부터 이미 국민들은 야구대표팀을 정죄하기 시작했다. 도미니카에 이겨서 동메달을 따더라도 병역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비록 실력에서 뒤지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있는 일본에 진 것만으로 용서가 되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가져다 준 김경문 감독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전략이 잘못되었고 투수를 혹사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 강백호는 도미니카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넋 놓고 껌을 씹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서 또 곤욕을 치렀다.
나는 승부를 예상은 하지만 패인을 분석하는 관전평은 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관전평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야구경기를 마치 이기거나 지는 운명이 정해진 것 같이 패인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야구는 단판으로 승부하는 경기가 아니다. 그래서 단판으로 승부하는 축구와는 달리 월드시리즈와 코리안시리즈는 7전4승제를 한다. 3번 연속으로 지던 팀이 4번 승리해서 역전 우승하는 것이 야구이다. 아무리 강한 팀도 전승우승은 없다. 가끔은 지는 것이다. 야구에서 투수가 바뀌면 그 팀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를 단판 승부로 한다면 뛰어난 투수를 가진 팀이 유리하다. 이전에 비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도쿄올림픽 한국팀은 투수진이 약했다. 단기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야구는 확률의 경기이다. 이승엽 선수가 한 경기에서 3진을 4번 당하더라도 그 경기로 그 선수를 형편없는 선수로 판단할 수 없다. 1년을 지켜봐야 타율과 타점 그리고 홈런 개수로 그 선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야구에서 진실은 확률에 있다. 다시 말하면 많은 경기를 통해서만 진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단판으로 하는 야구경기는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만약 일본팀과 미국팀과 경기를 10번씩 치르게 되면 한국은 그들에게 몇 번은 괴력을 발휘해서 이길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꼴지를 하게 되어 있다. 그게 야구다.
KBO와 메이저리그와 일본의 프로야구를 한번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한국의 야구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강한 정신력으로 여태까지 괴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우리가 과거에 기적을 발휘해서 일본과 미국을 몇 번 이겼지만 그것이 예외적인 사건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젊은 선수들이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는가? 최선을 다해도 질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다. 젊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과거 명감독으로 꼽히던 분이 이번 경기를 보고 “정신력이 부족했다”고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았다. 지고 나서 더 이상 이런 황당한 얘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맞다. 하지만 그때는 춥고 배고팠으니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 지금도 헝그리 정신을 기대하는가? 경기를 관람하는 필자보다 병역혜택이 걸려있는 강백호에게는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떠나서 사활이 걸린 승부였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단지 실력을 넘어서는 운과 기적이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아서 우리의 실력 그대로 4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스포츠는 최선을 다해서 정정당당하게 싸우면 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겨야 된다? 어느 것이 답인지 물어보고 싶다. 기대를 갖고 응원은 할 수 있지만 졌을 때 비난 하지는 말자. 지켜보는 나보다 선수들은 몇배 더 좌절한다. 최선을 다 했지만 패배해 좌절하고 있을 우리의 젊은 야구선수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