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올림픽 육상 이야기⑪] 마라톤 영웅들···손기정·자토팩·아베베·황영조·킵초게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현대 마라톤에서 최초로 2시간 30분의 벽을 깬 사람은 한국의 손기정이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일장기를 달고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앞서 손기정은 1935년 도쿄 메이지 신궁대회에서 처음 출전한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26분의 엄청난 기록으로 우승한 바 있다. 이 기록은 당시 공식 신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1936년 손기정은 양정고 동기였던 남승룡과 베를린올림픽에 일본대표로 참가한다. 이미 1932년 LA올림픽에서 일본 선수의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했던 김은배가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라 일본선수들을 제치고 6위를 차지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가능하면 일본선수들을 대표로 뽑고 싶었으나 두선수의 기량이 워낙 뛰어났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의 기록으로 우승하고 남승룡은 동메달을 딴다. 우승 직후 손기정이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슬푸다’라는 석자가 쓰여 있었다. 남승룡은 “받은 꽃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기정이가 그렇게 부러웠다”고 회고했다.

손기정이 조선의 영웅으로 등극하면서 1937년부터 일제는 손기정의 경기출전을 막았다. 그는 더 이상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고 1945년까지 은행원으로 일해야 했다. 광복 이후 그는 지도자로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인 서윤복과 함기용을 훈련시켰다. 1988년 78세 나이에 성화 마지막 주자로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기뻐서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성화를 봉송하던 고 손기정 옹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토팩

에밀 자토팩은 1948년 헬싱키올림픽 10000미터 경기에서 금메달, 5000미터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는 10000미터와 5000미터에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우승했다. 이룰 것이 더 이상 없었던 그는 그전에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마라톤을 처음 뛰는 그는 경기 도중 당시 세계기록 보유자인 영국의 짐 피터스에게 경기 페이스가 어떤가 물어보았다. 피터스는 속도감이 너무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자토백은 갑자기 속도를 높여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나가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보통 장거리 육상선수들은 상체와 머리를 꼿꼿이 세우는 반면 자토팩은 상체와 머리를 옆으로 흔들면서 뛰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식식대며 달리는 그에게 인간기관차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토팩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리는 소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민주화운동 때 적극적 목소리를 내었다. 그 후 그는 육군대령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청소부로 전락했다. 청소부 자토팩을 보고 제2의 프라하의 봄이 재현될 조짐이 보이자 체코 당국은 그를 우라늄 광산으로 보내 20년이 넘도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들었던 자토팩은 진정한 영웅이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의 아베네(앞)기 달리고 있다

이디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는 한국전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아베베는 원래 국가대표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이디오피아의 올림픽 대표가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로마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다. 아베베는 로마올림픽에서 2시간 20분의 벽을 깨고 2시간 16초 2로 세계신기록을 세운다. 세계신기록보다 놀라운 점은 결승전을 통과하는 아베베의 발에 신발이 없었다. 아베베가 뒤늦게 국가대표에 합류하느라고 발에 맞는 신발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흔들며 달리는 자토팩에 비해 최초로 야간에 열린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무표정으로 달리는 아베베의 모습은 오히려 성스럽게 보인다. 이후 아베베는 맨발의 성자로 불린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아베베는 대회 40일전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불과 2주 후 아베베는 다시 훈련에 돌입했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마라톤화를 신고 2시간 12분 11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다. 일본에서는 아베베가 맹장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우승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디오피아 국가를 준비하지 못해 시상식에서 이디오피아 국가 대신 기미가요를 연주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아베베는 부상을 입은 상태로 출전하여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였다. 아베베는 부상은 다 극복했다고 허세를 부리며 페이스를 끌어올려서 다른 선수들을 지치게 하고 17km에서 기권했다. 10000 미터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던 이디오피아의 마모웰데는 페이스를 잃지 않고 아베베에 이어 이디오피아에 금메달을 선물할 수 있었다. 아베베는 1969년 자동차 사고로 척추가 손상되어 하반신마비로 다시는 육상경기는커녕 걸을 수 없었다.

아베베는 좌절하지 않고 장애인대회에 참가하는 등 강인한 정신력을 보였으나 1973년 또 한 번의 교통사고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아베베에 이어 올림픽 우승은 못했지만 호주의 데릭 클레이튼은 1969년 벨기에에서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2시간 8분 33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운다. 10년 넘게 유지되던 이 기록은 미국의 살라자르, 호수의 카스텔라, 영국의 존스에 의해 깨지고 1984년 LA올림픽 우승자인 포르투갈의 로페스 등에 의해서 7분대에 진입한다. 로페스는 세계기록을 세운 최후의 백인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마라톤 우승 황영조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는 최후의 아프리카 출신이 아닌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로 기록된다. 1996년 애틀란타에서 이봉주는 아깝게 남아공의 투가니에게 3초 차이로 은메달에 그쳐서 황영조의 기록을 이어가지 못했다.

현재 마라톤은 2000년대 들어서 2시간 5분대의 기록이 깨지면서 지구력에서 스피드의 마라톤으로 바뀐다. 그 동안 마라톤계를 지배했던 아시아권 선수들과 유럽선수들이 상위권에서 다 사라지고 남녀를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선수들이 올림픽 상위권과 세계신기록을 지배하고 있다.

킵초게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우승했던 엘리우드 킵초게는 2018년 2시간 1분 39초의 세계신기록도 세웠다. 킵초게는 참가한 거의 대부분의 마라톤대회에서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최고의 선수이며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마라톤 우승을 노리고 있다. 킵초게는 2020년 10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세계기록을 위한 특별 이벤트대회에서 드디어 2시간의 벽을 무너뜨리고 1시간 59분 40.2초에 달렸다. 이 기록은 41명의 페이스메이커를 동원하였기 때문에 공식 세계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킵초게는 인간의 한계로 일컬어지는 2시간 이내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케냐 출신 귀화 한국인 오주한과 그의 한국 아버지 고 오창석 감독

한국의 오주한은 케냐의 장거리 선수였는데 서울 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한국에 귀화하였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매우 무더운 특별한 상황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현재의 스피드 마라톤이 아니라 과거의 지구력의 마라톤이 될 수 있다. 2시간 5분대의 기록을 갖고 있는 오주한도 얼마든지 우승권에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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