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개막식·폐막식 통해본 ‘스포츠와 문화’

7월 23일 일본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일장기가 게양되는 가운데 여가수가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다.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나는 항상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관심 갖고 지켜본다. 그 나라의 문화가 한 순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보고 느낀 감정을 한 단어로 ‘기괴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7만명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에 관객 없이 1000명 정도의 VIP들만 참석한 데다 마스크 쓰고 입장하는 선수들 모습이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지만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그걸 넘어서 기괴한 느낌이었다. 여성가수가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면서 시작하고 느닷없이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희생당한 이스라엘 선수들을 추모하는 강령술과 같은 진혼의 공연과 묵념의 시간은 상당히 어색하였다. 마치 장례식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의 20분이나 되는 축사는 황당함의 극치였다.

도쿄올림픽 폐막식 공연

폐막식은 더 황당하고 기괴했다. 왜 진혼의 춤이 폐막식에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진혼의 춤을 여성이 기괴한 옷을 입고 좀비같이 추는지도 이해가지 않는다. 이어지는 일본 각지에서의 진혼의식 춤과 일본가수의 전통노래는 초등학교 학예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련되지 못했다. 기괴한 곡성과 초등학생이 부르는 것과 같은 스타일의 음악에 폐막식 행사 이전까지 서로 웃고 기념촬영도 하고 춤도 추던 축제 분위기가 팍 죽어버렸다. 더구나 올림픽 찬가를 남성 도모타카 오카모토가 소프라노로 부르는 모습은 기괴함의 극치였다.

한국적이고 무속적인 모습은 서울올림픽에서도 있었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은 한강에서의 배가 출발하는 모습으로 시작하고 폐막식은 떠나는 배로 표현했다. 한국의 뱃노래 메들리로 이어진 후 흐느끼듯 단소선율과 함께 한영숙의 살풀이를 보면서 우리 문화가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88서울올림픽 폐막식 장면

나는 서울올림픽을 영국에서 지켜보았다. 개막식과 폐막식 이후 영국친구가 나에게 “너의 나라 문화가 참 멋지다. 정말 자랑스럽겠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매우 뿌듯했다.

지금은 BTS가 빌보드 10주 연속 1위를 할 정도로 문화강국이 되었지만 그때까지 한국은 해외에서 잘 모르는 나라였다. 영국의 해설자가 폐막식 중에 울려 펴지는 한국의 뱃노래들을 서양의 운율과 완전히 다른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극찬하는 걸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서울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 한국적이고 무속적인 모습이 도쿄올림픽과 다른 점은 서울올림픽은 끊임없는 상징 속에서 문화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원래 도쿄올림픽의 개·폐막식 감독은 미키코였는데, 올림픽 두달 앞두고 지난 5월 사사키로 갑자기 교체되었다. 신임감독 사사키는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축소했다. 500명에 달하는 연출팀이 해체되었다. 그뿐 아니라 온갖 압력이 쇄도했다. 고이케 도쿄지사는 연출에 목공과 소방수를 반드시 넣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개회식에서 오륜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퍼포먼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더구나 개회식 직전 음악감독이 학창시절 학폭사건으로, 연출자는 홀로코스트를 개그 소재로 삼은 이유로 물러났다.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떠나서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팀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금메달 27개, 총 메달 58개를 따냈다. 금메달 숫자로 따지면 전체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일본 올림픽 사상 최고 성적이다. 막판까지 개최 여부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은 도쿄올림픽에서 일본팀의 놀라운 성과는 코로나19로 지친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하지만 대단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도쿄올림픽이 일본 문화를 알리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일본적인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깨졌다. 문화는 스포츠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올림픽에서 주최국이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스포츠의 결과보다 문화적인 인상이다.

2020년 아카데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받은 직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의 심은경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의 대종상에서 일본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일본 국민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위대한 국민도 구조적인 편견 속에서 문화를 발전시키기 어렵다. 일본문화가 한국을 한참 앞선 것으로 보였고, 일본문화를 수입하는 문제에 대해서 큰 논란들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격세지감이 크다.

모든 면에서 뒤늦게 출발한 한국이 혁신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IT시대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일본을 앞서게 되었다. 도쿄올림픽의 개·폐막식과 한국문화를 세련되게 표현해 전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3년 전 평창동계올림픽을 비교해보게 된다.

도쿄올림픽 개·폐막식을 보면서 일본의 문화가 왜 뒤처지고 있는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답은 명확하다. 더 이상 관이 문화를 주도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일본과 한국에 동시에 주는 답이다. 정부정책에 순응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일본국민이 문화적 권한을 쟁취할 때 다시 문화의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백범은 문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선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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